한 꺽다리에 대한 추억(핸드볼선수 윤경신)

나는 고려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서울에 있는 고려고등학교다. 반드시 '서울'이라고 붙여야 하는 이유는...전라도 광주에도 고려고등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와 같은 재단이고 지금은 학교 이름은 '고대부속고등학교'로 바뀌었다지만...뭐...내가 다녔을 땐 '같은 재단'이라는 느낌은 별로 나지 않았다. 캠퍼스도 붙어있지 않고(고대는 안암동이지만 고려중-고등학교는 정릉이다)...'다른 학교'라는 느낌이 강하다. 같다면야 고대 병설보건전문대학교가 더 같은 느낌이다. 왜냐면 운동장이나 교정을 같이 썼으니까.
아...교가하고 응원가는 같다.
교가는 조금 틀리고 응원가는 같이 쓴다. 고대 나오신 분들과 응원가 같이 부르라면 부를 수 있다.
"나가자~ 폭풍같이~ "

고려중.고등학교의 교기는 핸드볼이다.
핸드볼도 비인기 종목중 하나이지만 당당히 교기로 되어 있었다. 중학교때엔 변변한 스포츠 팀이 학교 안엔 없었다. 고려중학교는 육상부와 태권도부가 있었다지만 태권도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초등학생중 조금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였지 않았나 싶다. 정식으로 부실도 없었다.
고려고등학교는 핸드볼부가 있었다. 체육관은 없었지만...맨날 오후가 되면 맨땅에서 정말 몸을 날리면서 흙먼지 마셔가며 운동하는 깡마른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이 고려고등학교 핸드볼부였다.
뭐...딱히 유명한 선수야 지금 말하는 윤경신 외엔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아마 88올림픽 때 여자대표팀 코칭스태프에 고려고등학교 출신이 있었던 것 같다. 감독인지 코치인지(감독으로 기억한다)가 고려고등학교 출신이라고 학교 교문앞에 플래카드 달아놨던 기억이 나니까...

뭐...배정받아 들어가는지라 나야 고려,중고등학교에서 6년간을 다니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 매년 체육대회를 했었는데 남자는 축구와 핸드볼이 구기종목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마 다른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구기종목 편성이지 않나 싶다.
그러다 보니 아마도...조금 스포츠에 관심있었던 고려중-고등학교 출신이라면 핸드볼은 웬만큼 볼거다. 규칙 어느정도는 다 알 정도일거다.
뭐...특기생도 아닌 고교생끼리의 학교 체육대회에서 골키퍼 키 넘기는 로빙 슛은 기본중 기본이고, 대표팀 경기에서도 가끔가다 보이곤 하는 스카이 플레이가 막 나오고 리바운드된 공을 다이렉트 스카이 슛 하는 플레이들이 속출하던 정도였으니...뭐 요즘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핸드볼 경기 보는거야 아주아주 가볍게 감상하지...-_-;;;;

난 1988년에 고려고등학교에 입학했다. 20기였다.
그해 핸드볼 대회에서 고려고등학교는 우승을 했다. 그 당시 고려고등학교라 하면 핸드볼의 강자라 불렸단다.
2학년이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이번에 190 넘는 녀석이 들어온다는데?"

뭐? 190?
피식 웃었다.
"여기에 농구부가 있어? 배구부가 있어? 그 키라면 농구나 배구를 해야지...무슨...핸드볼부에..."
그런데 들어왔단다.
어느날 복도를 걸어가는데 내 머리만큼 더 큰 녀석이 쓰윽 ~ 지나가는거다.
당시 내 키가 170조금 넘었나?(지금 키는 178cm)니까...192인가 5였다니깐...정말 나보다 머리 하나는 위에 있는 거였다.

"저기서 내리꽃는다면 막을 인간 없겠구만...점프한다면...어휴..."

윤경신에 대해 더 기억이 남는 것은 그의 키보다는 고려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경위였다.
당시 윤경신을 노리던 학교가 하나둘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이미 1980년대에도 고등학교 특기부에 '유망주'를 끌고 오기 위핸 스카우트 전쟁은 대단했단다.

얼마전 아는 후배가 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동생이 축구 하는데 고교 진학 놓고 프로팀에서도 제의 들어오고 해서 고민이라고...얼마의 계약금 제시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하여간 상.당.한.금.액. 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다.

그런데 윤경신이는 그 스카우트를 거부했단다.
중학교에서는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이미 쿵따리샤바라가 맞아있었지만...윤경신...대단했다.
아예 등교 거부를 해버렸댄다.(엄청난 녀석이다)
자기는 고려고등학교 가겠다고...핸드볼 기초를 가르쳐준 곳이라 감독님하고 고려고등학교 가겠다고 오래전부터 약속한건데 다른 학교 가기 싫다고...아예 진학한 고등학교에 출석도 안했다나?
그런뒤에 3개 학교가 모여서 결국 고려고등학교에 윤경신은 '무난히' 진학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 듣고...어린 나이에도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밖에 못했다.
고려고등학교는 지금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다만...당시엔 운동 특기자들에게 별도의 장학금 지급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냥 학비 면제하고 약간의 보조금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그것도 변변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다른 학교 갔으면 빵빵하게 돈 받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도 온 것이었다.
(방금, '지금은...'운운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그리고 윤경신이 있을 때...고려고등학교는 전국선수권에서 3연패인가를 해 내면서 우승기를 아예 영구히 가져와 버린다.(월드컵 영향인지 3연패를 하면 우승기를 아예 통으로 가져올 수 있었댄다. 그거 아마 아직도 고려고등학교에 있을 듯 하다)
그리고 내가 재수하고 있을 때 스포츠 신문 한켠에서 윤경신의 소식을 들었다 경희대에 진학한다고. 뭐...당시 그녀석 대학교에서 끌고가려고 얼마나 '모셔가기'경쟁을 했을지야 안봐도 뻔하다.
경희대 말고도 한국체대 등에서 '윤경신 끌고오면 4년간의 천하를 잡는다'는 생각이었을테니까. 당시 이미 2m에 육박했던가 2m였던가? 하여간 국내에선 그녀석의 고공을 막을 사람이 없었으니...

그냥 그땐 난 '1992년 올림픽에서 뭔가 작품 나오겠구만...' 싶었다. 1988올림픽에서 한국 남자핸드볼은 은메달을 땄지만 윤경신은 너무 어려서 대표팀에 뽑힐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한국 핸드볼은 그 이후...올림픽에서 입상하지 못했고...윤경신은 독일로 갔다.

그리고 고려고등학교 핸드볼부는 해체되었다. 윤경신이 졸업한 지 2년만이었다.
윤경신의 스카우트 파동도 원인 중 하나였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고려고등학교가 '부자학교'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학교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지라 운동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장학금 식으로 학교 다니게 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와 같이 학창생활을 보냈던 핸드볼 선수중 김영현이라는 녀석이 있다. 고2때 같은 반이었는데...이녀석 가끔가다 하는 TV중계를 보면 '잘 크면 국가대표로 클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선수다'라는 소리 많이 들었던 녀석이고 경기에서 보면 나오는 윙플레이를 보면 그야말로 '작은 새'가 떠올랐던 녀석이다. 그런데 이녀석...내가 듣기로는 한 작은 전문대로 갔다고 들었다.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학교 지원도 별로 없고...그리고 진학도 여의치 못하다...면 당연히 그 학교의 특기부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고려고등학교는 그렇게 핸드볼부가 사라졌다.
한해는 어찌어찌해서 총동문회가 모여서 어떻게 선수 수급도 하고 지원금도 모아서 한해 부활을 시켰다고 신문에 나기도 했지만...그걸로 끝이었다. 앞서 말한 '전국대회 3연패'를 해서 우승기를 가져오고 그리고 '윤경신'의 전설을 만들어 낸 고려고등학교의 핸드볼부는 지금은 없다.

오늘 남자핸드볼이 8강에서 떨어졌다.
윤경신이는 열심히 뛰려 했지만 그도 나이가 있는지(이제 우리나이 설흔둘인데...) 1992년 같지 않았다. 이미 10년전의 이야기니까...
아마 나이로 봐선 윤경신의 2006년 올림픽의 도전은 힘들것 같다.
아쉬움뿐이다.

고려고등학교의 마지막 대형 선수로서...그리고 그의 1년밖에 안되는 선배로서...
그의 도전의 아쉬움과 내 학교의 자랑스러웠던 운동부의 폐부가 겹쳐지며...서글픔을 느낀다.

수고 많았다 경신아...

by 홍차도둑 | 2004/08/25 01:55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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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피르 at 2004/08/25 09:53
스포츠에는 문외한인지라 잘은 모르지만...멋진 분이셨군요.
출전하신 선수들 한명 한명 모두 그들이 흘리는 땀 뒤에는 무수히 많은 노력과 숨겨진 이야기들이 존재하네요.
메달이나 성적과는 관계없이 노력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아따 at 2004/08/26 13:37
우움..
왼손잡이..였죠?(주장이였던가요?)
핸드볼 맨 처음 경기때 보고선..
자꾸 패널찬스에서 공이 안들어가는거예요.-_-;
아나운서나...경기를 보고 있던 저나..
안타까워서리....킁..

눈에 뛰는 선수더군요. 시종일관 윤경신선수 윤경신선수...

//글에서 안타까움이 마구마구...=_=;;
왠지 저까지 맘이 착찹해지는군요..

//참..여기 고려고등학교 있어요. ㅎㅎ
Commented by 이름쟁이™ at 2004/08/26 15:29
정릉 고려중88년.고려고 91년 입학이니까..3년 선배님이시군요...(__) ^^
저희들도 윤경신 선배 이야기 많이 들었답니다.
근데 이번엔 핸드볼 경기는 보지도 못했는데...-_-;
소식만 들었습니다...
Commented at 2007/12/03 01: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12/03 01: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7/12/04 08:34
비공개님 저하고는 한 6-7년 차이가 있으시군요.
그런데 저때만 하더라도 태권도부가 정식으로 있다기 보다는 뭐랄까요...초등학생때 잘하던 사람들이 계속하는 거고 정식 부실이나 그런게 없었습니다.

제가 3년간 고려중을 다니면서 태권도부가 시상받는걸 딱 한번 봤거든요.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박영모님이 재학중이실 땐 태권도부가 잘 나갈때였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재학중이던 중학교 시절인 1985-1987 사이에 고려중 태권도부는 유명무실이었죠. 그러고보니 그 때 고려고에선 역도부도 있었고 부실도 있었는데 제가 입학할 무렵엔 없다고 하더라구요.

운동부 중에서 태권도부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섭섭하신 듯 합니다만. 이 글은 핸드볼에 대한 이야기지 운동부 전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섭섭함은 알겠습니다만 이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십니다. 잘못 아셨다는 이야기는 더 하는군요
Commented by 소리 at 2008/08/14 15:28
반갑습니다. 저도 고려고 졸업생이에요. 고려고 17회 졸업(1984년 입학)
나가자~ 폭풍같이 고려 건아~여, 장안을 뒤흔드는 젊은 호~랑이 하던 응원가 기억나네요.
저도 핸드볼부 경기 몇 번 응원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고려고 재학당시 체육대회는 유명했죠. 반별로 모두 다른 체육복 색깔 때문에 다른반에서 빌려입지도 못했던 추억도 있고요...
덩사 핸드볼부는 김석주(체육)선생님께서 지도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지금은 서울을 떠나서 살고 있지만 가끔 그곳을 지나면 학창시절 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답니다
모처럼 옛 추억을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지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맹활약을 하는 윤경신 선수를 보며 뿌듯한 마음 가져 봅니다.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8/08/14 19:40
저의 4년 선배님이시군요 제가 1988년 입학니다.
참 그때 그 흙먼지 풀풀 나는 운동장에서 운동하고 하던걸 생각하면 정말 눈물납니다. 지금도 변하진 않았더군요.

윤경신후배님은 지금 독일 진출한것을 관두고 다시 돌아왔답니다. M25에서도 인터뷰를 했던데 거기서 보니 '한국의 핸드볼 보급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서 돌아왔다' 라고 했습니다.
정말 눈물납니다. 멋진 후배에요 T_T
Commented by 소리 at 2008/08/16 09:30
전 숭덕,삼선중,고려고 이렇게 졸업했습니다^^
미아리고개 호떡집, 아리랑시장, 돈암동태극당, 대지극장... 시내버스 1,2,3번이 모두 지나가던 곳
정릉, 청수장, 배밭골.. 지금은 모두 아련한 제 유년기와 사춘기의 추억들이 묻혀있는 곳이네요.
홍차도둑님 만나뵙게 되어 반갑고 신기하고 기쁩니다^^ 앞으로 가끔 찾아올게요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8/08/18 00:50
흐흐, 1,2,3,5번이 지나가던 곳^^(4번은 불길하다니까 빠졌나봐요)
우이동이 6,7,8,9번이 줄줄이 있었던 25년전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

인터넷의 재미잇는 점은 역시 전혀 모르던 얼굴인데도 약간의 계기만으로 또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가끔가다 놀러와 주십시오 ^^
Commented by 호이 at 2008/08/26 09:40
반갑습니다. 고려고 동문으로서 그리고 20기 동기로서... 저도 윤경신선수 검색하다가 여기까지 와서 동문들 글을 읽어보게 되는군요. 독일에서는 레전드인데 국내에서는 빌빌기는 축구선수보다도 명성이 없다는 사실이 가슴아프고 핸드볼부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아프네요. 그런데 헷갈리는게 하나있네요. 제가 20기인데 87년에 입학했거든요? 대학교 90학번이니까 87년 입학이 맞는데 홍차도둑님이 깃수아니면 입학연도를 헷갈리시는듯 합니다. 그리고 내가 3학년때 윤경신선수를 본듯하니 홍차도둑님 21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 어찌되었든 사회생활하면서도 극히 만나기 힘든 고려고 동문들을 여기서 보게되니 너무 반갑고 윤경신 후배님도 국내에 돌아온다니 일부러라도 경기하는 모습 보러가야겠습니다.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8/08/26 22:32
예, 제가 기수를 하나 착각했습니다. 제가 21기가 맞습니다.
어쩌다 이 글을 검색하셨군요, 제가 졸업한 뒤에 핸드볼부가 사라졌는데 얼마전에 알아보니 다시 부활했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기쁜 소식이긴 합니다.
얼마전 M25라는 무가지의 인터뷰를 보면서 후속편 내지는 확장편 쓸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그래도 검색에서 이 글이 자주 나오는 모양입니다.
저도 기회되면 윤경신 후배님의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찾아가야 할까 합니다.

가끔가다 들려주십시오 ^^ 감사합니다 선배님.
Commented by 전환수 at 2008/09/21 02:00
저는 77학번입니다.
10회 졸업생이구여.
참 반갑네여..*^^*
우리 때는 전국대회 준결승 이상되면 동대문구장에 응원을 갔더랬는데..
당시 전국대회 7개 대회 중에 6개 우승, 1개 준우승...
유재충 감독-나중에 국대 감독, kbs해설 하고 그랬죠..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8/09/21 23:56
어이쿠 저의 11년 선배님이시군요 ^^
네, 이전에 고려고등학교의 핸드볼은 뭐 전국대회를 그야말로 쓸어버린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러고보니 동대문은 아니구 잠실에 한번 응원 갔던 적 있었습니다. 그 뒤의 후배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가끔가다 놀러 오십시오 저도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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