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속의 여러 이야기들이 들리시나요?

tirano.egloos.com

포토로그



임어당(林語堂;린위탕)의 중국어(한자)타자기 주인장 일기



트랙백한 본문에서 보여주는 중국 한자의 타이핑 방식은...지금 보시더라도 아찔합니다.
중국의 한자는 몇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한자가 만들어지기도 하고...기존의 한자가 다른 뜻으로 합쳐지기도 하는 등 변화가 많다 보니 그 수많은 자전 들도 보면 수록되어 있는 한자의 숫자가 각각 다릅니다(뜻이 다른 경우도 있구요)

[트랙백 원문에도 나오는 타자기...이걸 '수식 타자기'라고 합니다. 1919년에 이 방식이 나왔습니다. 이 방식으로 들어가는 글자 수가 약 2400자 정도래요]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동양이 접하게 된 서양의 근대화 중 유명한 발명품은 타자기입니다. 글을 손으로 쓰는 것보다 더 빨리 쳐대는 '타자기'를 본 동양 3국의 지식인들은 경탄했습니다. 지식의 전달속도와 문서의 전달속도에서 이리 차이나는구나! 를 연발하면서 어찌하면 상형문자에 가까운 '한자'를 잘 쳐댈수 있는가를 놓고 고민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카나를 사용하기에 문자 수가 정돈되어 편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한자'라는 것이 있는 벽은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동음이어는 어찌 표현할 것이지 말입니까? 일본어나 한국어나 그 벽은 마찬가지였죠. 거기에 한글은 애당초 한글 만들 때 그놈의 틀을 한자로 박스형 틀에 뭉그려 들어가는 방식이기에 그 시대의 한글학자들은 '풀어쓰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머리를 굴려대죠.
어쨌거나 저 수많은 한자를 찾아내야 하는 저 괴로움...-_-;;;

그런데 중국어 타자기는 저것만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입력방식이 실제로 존재했고 무려 '제품'으로까지 나왔었습니다.

1919년에 나온 수식타자기에 도전장을 던진 용자가 있었으니...
여러분들이 '생활의 발견' 이라던가 '린위탕 중영사전'으로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는 문필가 임어당입니다.
그런데 왜 그 관련 자료가 없었을까요?
(실제로 네이버캐스트라던가 여러 위키에는 이런 부분들이 '안' 보입니다)
아미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잘 안보일 겁니다.

한국에선 관련 자료로 무려 출판된게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냐면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한국어판에 한번 소개되었습니다.
권말특집에 나오는 긴 기사인 '리더스 다이제스트 권말특집'에 임어당의 따님(둘째딸 임태을)이 쓴 "나의 아버지 임어당"이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어찌 보자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임어당의 일대기로는 거의 유일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19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함) 봤던 기억만으로 쓰는지라 잘못된 부분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아는 분께서 보론해 주시길.]

임어당은 수필가로서 미국에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번 돈을 어디에 쏟아붓느냐면...바로 중국어 타자기. 제대로 된 한자타자기를 제작하는데 쏟아붓습니다. 이걸 제작하기 위해 차이나타운을 뒤져서 활자 제작공과 타자기를 실제로 만들수 있는 타자기 수리공및 기계제작가를 찾아내서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임어당에게는 평생의 도전을 위한 과제가 하나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희자전'에서의 '부수 순서'는 많은 한자 자전에서 쓰이는 '중국 한자의 대표적인 분류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게 타자기라는 쪽으로 가게 되면 상당히 불편합니다. 찾는데 글자 하나 찾는데 엄청 힘들다는 거죠.

실제로 영문 자판에서도 흔히 쓰인다는 qwerty자판을 놓고도 누가 발명했느냐를 놓고 논쟁이 많습니다. 실제로 타자기의 발명가인 숄스가 프로토타입을 들고 에디슨을 찾아갔을때 에디슨이 "자판 배열좀 바꾸지?"라고 했을 정도라니까요(숄스의 동료도 그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니 뭐...)

그래서 임어당은 타자기를 만들기 전에 위에 이야기한 제작 공인들을 만들기 전에 했던 일은 '자판 배열'및 어떻게 한자를 빨리 찾아서 '키보드 안에' 넣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이게 무려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세를 타기 이전. 1930년대 미국으로 가기 전부터 연구과제였답니다.
'생활의 발견'이 히트를 치고 다른 책들도 유명세를 타면서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자 이제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갑니다.
이 중국어 타자기를 놓고 임어당은 투자자를 모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돈을 때려박아 연구와 제작에 들어갑니다. 하나하나 새로 부품을 설계하고 연동시키면서 들어간 세월은 오래 걸렸습니다.

2차대전때에도 계속 연구하면서 결국 2차대전이 끝나고 완성품이 나왔습니다.

[임어당의 '명쾌타자기'의 내부 구조사진. 뒤쪽의 원통에 기본적으로 7000자를 넣었고, 이후 확장 가능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9만자까지 확장가능했다 합니다. 저 안의 복잡함을 보면 저거 만드는데 인기작가가 자기 전재산을 꼴아박은 이유를 알만 합니다. 타자기 뒤쪽 원통의 앞에 있는 것은 주사스크린. 재빠르게 한자의 위치를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한자를 사용빈도수대로 나눠서 6면의 통에 배열하고 그 한자를 우선적으로 찾아서 타자를 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합니다.
관련하여 타자기 위쪽에 현재의 액정스크린 비슷한 주사선 스크린을 넣어서 글자를 찾는 방법을 빠르게 하는 등 현재 컴퓨터에서 중국어를 입력하는 방법과 상당히 유사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이렇게 '~이랬다고 합니다' 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이유는 뒤에 설명합니다)

'나의 아버지 임어당' 이 글을 쓴 임어당의 둘째딸이 타이피스트가 되서 열심히 연습해서 분당 50개 정도의 한자를 입력할 수 있는 초고속 스피드였답니다.
이러한 하드 스피드를 임태을이 낼 정도가 되자 임어당은 특허를 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 타자기 회사에게 초대장을 발송하고 발명 발표회를 엽니다.
'임어당 중국어 타자기를 발명하다' 라고 말이죠.

타자기 이름도 멋지게 지었습니다.
'명쾌'
우리가 아는 그 '명쾌하다' 할때의 명쾌입니다. 그만큼 자신있던거죠.


[한자 타자기 시연중인 임태을과 임어당. 키보드 위에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주사스크린 부분이라네요]


미국의 유명 타자기 회사에서는 '호옹이! 존내 빠르게 치는 중국어 타자기라고라?' '뭐?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한 임어당이 만들었다고?' '가만있자? 믹서기 발명한것도 인기인인 프레드 워링이 돈 대서란 말야? 그럼 임어당도 꽤 유명인인데?'(믹서기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지요) '호오...그런 인기인이 발표하는거면 신빙성이 있겠는데?' '중국은 인구가 억명이 넘잖아? 수식 말고 서양에서 쓰는거 같은 본격적인 타자기라면?' 하고 주판알 굴리던 회사들은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립니다.

"오케이! 이거 잘하면 돈 되겠다?"

그리고 그 발명 발표회에 우르르 모입니다.
임어당은 발표회에 모인 미국 유수의 타자기 회사의 높으신 분들을 상대로 '이전의 수식 타자기의 조낸 괴로움을 제가 해결했습니다!' '보십쇼 쌈박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 타자기의 장점은 주사스크린을 통해 입력하는 한자의 위치를 조낸 빨리 찾을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으로 분당 50타라는 조낸 빠른 속도를 이룩했습니다'
라며 당당히 설명하고 이제 작동시키는 순간.

...시박...'블루스크린' 사태가 발생했습니다...진짜요...-_-;

아아 새로운 운영체계의 시연회에서의 블루스크린 크리는 무려 1946년부터 이어저 내려온 전통이었던 겁니다.

임어당과 막내딸은 막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만든 제작자를 불러서 다시 확인한 결과 고장 수리를 하고 다음날 다시 시연회를 한 뒤 '중국이 억대 시장 아닙니까? 단일 언어지만 이거 팔면 끝내줄겁니다.'라고 설득한 끝에 한 회사와(레밍턴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로얄티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아 이제 임어당 앞에는 꽃길만 펼쳐지려는 순간...
...나가리가 났습니다. -_-;

이 계약을 맺은 시점이 1946년입니다. 발명한 것도 1946년
어디서 많이 들은 해죠?
네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과의 최후의 내전을 벌인 바로 그 해입니다.

임어당과 그 회사는 ㅈ된겁니다. 계약하자마자 얼마 안되서 장제스가 "공산당을 공격한다!"고 발표한겁니다.
유일한 시장이 그꼬라지가 났어요...-_-;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1949년에 최후의 승자는 마오쩌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_-;
'그래도 장제스가 이기면 다시 시장이 열린다!' 하고 기다렸었지만...최후의 승자가 마오쩌둥이 되면서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끊어졌고...아 시바 ㅈ됐다 하는 임어당과 타자기 회사...그냥 망한겁니다. 중국어 타자기는...

이때 친우였던 박진주 여사에게 돈 때문에 손 벌렸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하면서 박진주 여사와의 관계도 엉망이 되어버리고 이후 대만에 갈 때까지 상황이 X되어버립니다. (싱가폴의 화교 대학교 총장 부임했다가 장졔스주의자라고 쫒겨나고 등등)

그러면서 해당 타자기는 잊혀진 산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장이 사라지니 그 제품은 미국 타자기 회사의 창고에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둘째딸 임태을이 중국어판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주필이 되서 문득 '아버지의 그 발명품이 미국 타자기 회사에 있었지!' 하고 그 회사에 물어보니 ... 쌀쌀한 답이 돌아왔답니다.
"지난달에 폐기해버렸는데요"

...그렇게 시대를 앞서간 명쾌 타자기는 특허청에 있는 도면 몇개. 임어당과 임태을이 프로토타입을 연습하는 사진 몇장 외에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망해버리는 바람에 임어당의 다른 업적들을 줄줄 좔좔 쓰는 여러 문서에서도 '한자 타자기 만들긴 했는데 상용화 안되고 망함' 이라고 한줄 써주면 다행일 정도로 철저히 잊혀졌지요. 근데 그 '실패작'에서도 결국 그의 최고의 업적에 토대가 되는 것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임어당의 둘째딸 임태을은 작가였던지라 아버지에게 들은 설명과 자기가 직접 쳤던 기억으로만 '나의 아버지 임어당'에서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완벽한 작동원리 등의 공학적 부분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리이리 작동했다고 합니다' 라는 말 밖에 할수가 없습니다.
임어당의 라이센스를 산 회사에서 프로토타입 제품 뿐 아니라 설계도면까지 싸그리 폐기해 버렸거든요. 이젠 다시 작동하지 않는 '이미테이션'은 사진을 본따서 만들수는 있어도 완벽한 작동 복원품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임어당도 이 설계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답니다. 그저 키보드 모형만 가지고 있었답니다.
임어당은 이 키보드 모형이 발명품의 핵심이었고 자신이 최고 업적으로 여기는 "현대 중영사전"(1972년작)을 만드는데 기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키보드 배치를 고민하는 동안, 그 연구를 통해 강희자전 식이 아닌 다른 한자분류체계를 만드는데 큰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라지요.

이렇게 사라진 '환상의 발명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트랙백한 글의 방식 외에는 현재로선 '발전된 방법'이 있었음을 구전에 가깝게 전달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임어당은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것 뿐 아니라 그를 위한 '타자기'까지 고안하며 노력한 분이죠.


(20년도 더 된 한국어판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실렸던 '나의 아버지 임어당'에서 이 한자타자기 부분만 낑낑 기억내서 온라인상에서 두들겨 바로 쓴 글이니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정해 주실 분은 보론해 주시길)

덧글

  • 자유로운 2017/02/14 02:50 # 답글

    너무나도 아쉬운 일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자들 덕분에... 정말 아쉽네요.
  • 홍차도둑 2017/02/14 02:59 #

    이게 실은 최후의 국공내전만 아니었어도...아니 장제스가 대권을 쥐었으면 또 몰랐죠...
  • 슈타인호프 2017/02/14 05:09 # 답글

    정말 안타까운 결말이군요--;;;
  • 홍차도둑 2017/02/14 10:02 #

    세기의 발명품이 그냥 묻혀졌죠. 하지만 그 입력방식은 컴퓨터 시대인 지금도 살아남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 漁夫 2017/02/14 07:37 # 답글

    딸과 찍은 저 사진은 보았는데 세부 내용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요.
  • 漁夫 2017/02/14 08:02 #

    머나먼 다리나 이 용감한 젊은이들 같은 2차대전 글은 정말 상세히 기억하는데, 이 기사는 솔직히 재미가 없어서요 ^^;;
  • 홍차도둑 2017/02/14 10:04 #

    노노노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온 그 사진은 제가 올린 사진 아닙니다. 물론 임태을이 타자치는 모습을 임어당이 지켜보는 모습입니다만. 임어당은 담배파이프를 들고 서 있는 흑백사진이지 저런 단색컬러 처리된 사진은 아니어요.

    제가 '머나먼 다리'를 9살때 리더스 다이제스트로 접했고 그 다음해인가에 TV에서 영화를 보여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2000년. 전 그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아른햄 대교는 여전히 남아있고 그 옆에 새로운 다리를 만들었더군요. 굽시니스트는 거짓말장이!
  • 漁夫 2017/02/14 22:15 #

    아 맞습니다. 담배파이프였네요. 사진은 어케 기억납니다.

    그 추억의 아른헴 대교. 당시에는 장애물 더미가 쌓여 독일군 탱크의 도하를 가로막던...
  • 위장효과 2017/02/14 07:48 # 답글

    임어당이라면 당시 영어 선생님이 "영어 제일 잘하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서머셋 몸과 임어당 둘 중 하나야. 둘 다 성인되어 배웠는지라 문법대로 쓰는데 익숙해졌거든." 성문 영어만 봐도 그노무 관계대명사 설명하는 예문에 몸의 글이 빠진 적이 없지 말임다(아마도 가장 많은 예문이 실린 작가일 듯...^^)

    그렇게 폐기된 역사적인 유물들이 한 두개가 아니죠...쩝...
  • 漁夫 2017/02/14 08:03 #

    심지어 몸은 종합영어에도 등장했죠.
  • 홍차도둑 2017/02/14 10:05 #

    아마 비슷하게도 '중국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 중 중국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미국 문단에서 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성문으로 섬머셋 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는...-_-;;;

    ...그렇게 오버테크놀러지로 인정되는게 하나둘이 아니죠 진짜...
  • 함부르거 2017/02/14 08:47 # 답글

    그 미국 타자기 회사는 레밍턴입니다. 샷건 만드는 회사와는 형제관계고 예전엔 타자기 업계에서 1,2위를 다투던 회사죠.
  • 홍차도둑 2017/02/14 10:06 #

    제가 헷갈렸던 부분이 당시 그 판권을 인수한 회사가 미국시장에서 좀 밀려서 그 역전을 노리기 위해 임어당의 특허권을 산 걸로 기억하고 있던지라...헷갈리더란 말입니다 ^^
  • 홍차도둑 2017/02/14 15:52 #

    http://tirano.egloos.com/4130389#8811748

    레밍턴 아니랍니다 으허허허
  • 함부르거 2017/02/14 16:58 #

    흠 영문위키에는 레밍턴 사장한테 프레젠테이션 했다 하는데 판권 이야기는 안 나오네요.. 저도 착각했습니다. 이래서 자세히 읽어봐야...
    https://en.wikipedia.org/wiki/Chinese_typewriter
  • 뽀도르 2017/02/14 09:31 # 답글

    아폴로를 달에 보낸 새턴 로켓인가 그것도 기술이 상당부분 실전됐다던데, 그보다 더하군요
  • 홍차도둑 2017/02/14 10:09 #

    그건 이것과는 좀 다른 부분이라서...연료와 산화제를 섞는 부분을 지금과는 달리 전자제어나 그런거 없이 수동으로 섞이는 부분에 구멍들을 뚫어서 '섞기 최적화'를 이뤄낸 공밀레수준의 것이었던지라...그 당시의 '실제 계산식'이 실전되서 다시 만들어야 했던 문제라던가...그런 것들이었죠. 다시 처음부터 만들라면 못만들건 아닌데 다시 설계하고 만드는 시간보다 새턴 로켓의 1단부분을 역설계한 뒤 다시 확장시키거나 하는게 제작속도와 예산이 줄어드는지라...
    그걸 '오버테크놀로지' 등등으로 포장하는게 이게 참...그런 부분입니다.
  • 뽀도르 2017/02/14 13:10 #

    오호 그런 사연이 있군요;;;
  • 으흐흐흒 ㅠㅠ 2017/02/14 12:06 # 삭제 답글

    레밍턴 개썎끼뜰 ㅠㅠㅠㅠㅠ

    일본넘들한테 돈받고 팔지 그랬어 ㅆㅍ 왜 폐기를 하냐고오오오!!!!!!
  • Peuple 2017/02/14 13:52 # 답글

    http://www.strokewriter.com/essay_3col.html

    이 글 중간에 보시면, 명쾌 타자기의 기본 작동원리가 나옵니다. 부수 2개를 동시에 누르면 후보글자들이 스크린에 뜨는 식이었다고. 이후 레밍턴 시연회 실패->다른 중소타자기 회사와 계약->아 망했어요 순이었다고 합니다.
  • 홍차도둑 2017/02/14 15:52 #

    역시 제 기억이 맞았군요. 첫 시연회엔 레밍턴을 비롯해 여러 회사가 왔었고 고친뒤의 시연회에선 레밍턴이 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공학적인 작동원리'는 이야기하신 그게 아니라 기계 내부에서 자판 찾는 걸 이야기한 거였습니다 ^^
    거기다 당시 명쾌 타자기는 지금거하고 달라서 온리 세로쓰기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