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가 부족해, 자료가 부족해... 축구이야기

시골 헌집의 역사적 가치

제가 14년전 쯤 한국축구자료 정리를 시작할 때 비슷한 이유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과연 한국의 첫 A매치는 무엇일까?
를 놓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축구협회.
당시 아는 직원(이분 요즘 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모 축구 에이전트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것을 마지막으로 못뵈었으니까요. 하이텔 축구동을 축구협회에 처음 소개해 주고 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이 국제실을 뒤져서 찾아온 것은 겨우 A4용지 한장.
거기에 볼펜으로 적혀있던 몇줄.

1948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5-3 멕시코


어이없기도 했고 눈물나는 한줄이었습니다.
그때가 이미 전 한국바둑사학의 개척자 권경언 선생님(경향일보 바둑 해설을 하신 분입니다. 요즘 이분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이 월간바둑을 통해 '한국바둑의 뿌리가 없다. 1회 대회가 언제 어떻게 치뤄졌는지에 대한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라면서 한탄하셨던 글을 보아버렸던지라...그냥 헤까닥 해 버렸습니다.

원래 이 일은 소설가 고원정 선생님이 MBC의 축구 다큐멘타리의 대본을 쓰시기 위해 여러 축구 자료를 모으시던 일로 시작되었었습니다. 집필하시느라 바빠서 절 스크립터로 고용하신 것이지요.
(참고로 고원정 선생님도 상당한 축구광이십니다. 많이 드러나지 않은 것 뿐이지요. 김흥국씨의 엄청난 과는 이런 묵묵히 축구를 좋아하고 그것도 열성적인 분들이 앞에 나올수 없게끔 너무 오두방정을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걸음부터 헤까닥 돌아버렸습니다. 그 뒤에 적혀있는 것의 많은 부분이 볼펜으로 쓴 것. 그나마 나중에 가니 워드 아래한글의 1.5버전(아아 추억의 그 버전)들로 나온게 다...
한숨이 푸욱 푸욱 나왔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게...
날짜 안맞는 것도 발견...한숨 쉬었습니다.
당시 서초동의 국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저 혼자도 힘들어서 스크립터로 축구동아리의 아는 선배도 같이 갔습니다.
둘이 상의를 했지요.
'대한축구협회에서 본 자료의 날짜를 중심으로 하되 앞뒤로 3일씩 다 흩어본다!'
그 결과 마이크로필름실에서는 저와 그 선배가 완전 단골 다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끝은 아니었지요. 마이크로 필름으로 찾은 부분...그걸 또 출력해서 가야 했습니다.
그건 또 당시 국립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실에는 출력하는 것이 한대밖에 없었습니다. 에효~ 시간은 배로 걸렸지요.
이런 삽질은 1968년 중반의 신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때 일간스포츠가 나오면서 스포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니 날짜 오차가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삽질의 두달...

물론 그 이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경향신문이라는 몇몇 신문을 중심으로 뒤져야 했습니다.
그 결과 볼펜 한줄의 뒤에는 '몇시 어느 경기장' 이라는 것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큐멘타리에서는 런던 교외의 '덜리치 햄릿 경기장'(동아일보의 원문 기사에서는 다른 표기였습니다. 그래서 거기 알아내느라 MBC 취재진이 현지 취재 한 것으로 압니다)에서의 장면으로 시작했고 제가 쓴 '슈팅'이라는 만화에서 잉글랜드에서 열리는 청소년 대표팀이 방문하는 에피소드를 넣은 것이 그 경기장을 문헌으로라도 찾아낸 기쁨을 잊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결국 그 다큐멘타리는 끝났지만...한숨이 나왔습니다.
단 둘만이서 두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의 그러한 편린을 모은 것...
얼마 안되었지만 많은 빈자리가 남아있는 퍼즐에서 겨우 몇조각을 맞춘 것만으로는 힘들었었습니다.

거기에 동조를 해 준 것이 윤형진군이었습니다.
1995년쯤 시작된 이 행진은 길었습니다. 결국 2005년쯤 되서야 간신히 첫 단추를 꿰었습니다. 10년정도 걸려서 간신히 첫 발자욱을...하지만 부분부분 해야 할 것은 많았습니다.

협회 DB를 손보는 일이 맡아졌습니다.
1960-1970년대의 전술까지 챙겨가면서 선수들의 포지션 분류까지 해야 하는 작업의 적임자라 하여 그걸 통으로 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결국은 다시 또 도서관으로 가게 되더군요. 헐값에 일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그런 문서들과 씨름하고 한글자 발견하는 걸 지금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끙끙대면서 해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증언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로
(그 당시 개념을 지금 현대의 개념과 일치시키기는 어렵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인너'라는 포지션이 분명 개념상 있었습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인너'포지션을 팀의 주공격 루트로 사용한 팀도 있었습니다. 현재 하는 용어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으면 편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이게 또 아니라서 더 힘든 문제였지요...핸드볼 하는 분들이 아는 '인너' 라는 포지션과 축구의 '인너'포지션이 같은 포지션입니다. 핸드볼의 한 갈래는 축구쪽에서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까지 감안하면서 하느라 하루에도 몇차례 머리가 빙빙 돌았었지요...결국은 완벽하게 맞추지 못하고 경기당 퍼즐 맞추기를 많이 해야했습니다. 사실 당시 폼이션이나 전술 등을 고려하지 않은 '폼 제작자'에 대해서 투덜도 많이 댔어요.
(CM4의 데이터 에디터 일을 했을 때에도 이런 일 많았습니다)

그동안 윤형진군이 큰 역할을 해 줬습니다. 자비를 들이기도 하고 협회의 도움을(국제부의 송기룡 부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받아 아시아 여러 나라의 도서관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기 기록뿐 아니라 선수 로스터 등을 확보한 부분이 생겼습니다. 퍼즐이 점점 맞춰지고 슬슬 그 퍼즐이 모인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결실이 '붉은악마 그 60년의 기록'이었습니다.
출판문제를 놓고 결국 공동출판이 되었지만 사실상 그 기록은 윤형진군의 금자탑입니다.
첫 시작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지 몰라도 정말 '우공이산'급의 일을 해 내준거지요. 난 그래서 윤형진군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아쉬운 것이 옛 축구자료의 발굴이었습니다.
슈타인호프님같은 아니 그러한 예시해준 만큼의 운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윤형진군도 아시아 곳곳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는데 때로는 좋은 운을 만났고, 때로는 그렇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떠야 했던 적도 많답니다.

아직 그 이야기의 빈 자리는 많습니다.
저와 윤형진군은 지금도 구 소련에서의 양대 스타중 하나인 올레흐 블로힌으로부터 '나의 후계자'라는 찬사를 받은 미하일 안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소련 축구의 1세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중앙아시아의 까레이스키들의 축구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습니다.
타슈켄트나 알마타 등지의 도서관에서 까레이스키 축구선수들의 활약이 담긴 한줄의 기사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슈타인호프님의 그 글을 좀 늦게 읽었습니다.
그 몇줄 몇장의 세월의 편린에 내가 찾고 싶은 자료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면...갑갑하지요 대체할 자료를 찾을수 없는 상황에선 한숨만 나올뿐이니까요.

언젠가 중앙아시아로 가서 거기 도서관을 섭렵하고 다닐 날이 올까요?
새벽에 집에 돌아가면서 열심히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나 들어야겠습니다.

아직도 윤형진군과 저의 그러한 정리작업은 계속됩니다. '붉은악마 그 60년의 기록'은 종착점이 절대로 아닙니다. 일단 급한 마음에 이정표 하나를 살짝 박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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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겜퍼군 2009/11/17 12:07 # 답글

    대단하십니다. 이런것도 전부 열정과... 그리고 좋아야 하는 일이죠^^
  • 홍차도둑 2009/11/19 10:22 #

    좋아서 하는데도 한계가 있긴 있었어요, 먹고사는 일은 정말 힘들더구만요
  • 바른손 2009/11/17 12:14 # 답글

    와 대단하십니다.한편으론 공식단체가 아니라 팬이 이런것을 정리하게 만드는 단체에게 안타까운 씁쓸함도 드는군요.

    그 열정에 꼭 좋은 결실이 있길 응원합니다.
  • 바셋 2009/11/17 12:47 #

    제가 알기론 지금은 안 하고 땡땡이 중이십니다. 각계의 비난을 들어 마땅하지만 보수도 없는 일이니 개인사정을 들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전 언젠가 꼭 꽃등심을 사겠노라 홍차도둑님께 약속합니다...
  • 바른손 2009/11/17 15:05 #

    좋은 관계입니다 *.*/
  • 홍차도둑 2009/11/19 10:23 #

    씁쓸했지요, 그점을 이야기 했을 때 핀잔먹은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게 더 씁쓸했지만요.
  • 슈타인호프 2009/11/17 12:39 # 답글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벽에서 뜯어낸 신문들 중에도 스포츠경기 기사가 꽤 있었는데, 이게 언제 무슨 경기인지 몰라서 그냥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버리지 말고 조각이라도 가져다 드렸다면 키워드로 내용을 확인하실 수도 있었겠네요--;;
  • 홍차도둑 2009/11/19 10:24 #

    그런 부분도 있었겠습니다.
    사실 1968년 이후는 일간스포츠 창간 이후라서 기록들은 정확하지만 논평이라던가 그런 것을 보면서 다른 시각을 보는것도 무지 재미있더라구요 ^^
  • 화성거주민 2009/11/17 21:54 # 답글

    사학에 매진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 홍차도둑 2009/11/19 10:25 #

    그나마 이게 정리되고 알려진 뒤부터 중국쪽에 비슷한 그룹이 생기는 등, 민간인 그룹들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기록들이 모이고 정리되어야 제대로 된 기록들이 나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숫자 말고도 로스터, 간단한 그 경기에 대한 설명들만 모아도 어마어마한 작업양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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