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4강의 영광, 그러나 윤정환은 없었다.
드디어 맞이한 월드컵 본선.
그러나 윤정환의 자리는 없었다.
폴란드전 2-0, 미국전 1-1, 포루투칼전 1-0 이라는 예선 내내 한국은 미드필드에서 엄청난 힘싸움을 벌이는 접전이었다. 이 상황에서 윤정환이 뛸 자리는 없었다. 16강 이탈리아전은 이건 뭐 전쟁이나 다름없던 상황이고, 8강 스페인전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아쉬워하는 4강 독일전. 많은 분들이 '0-1상황에서 윤정환을 투입해 보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로 꼽는다.
이미 윤정환은 1999년 3월28일에 열린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한건'을 만든 전과가 있기 대문이었다. 당시 한국은 0-0으로 경기가 끝나지 않을까 싶은 막판에 윤정환의 스루패스를 받은 최성용이 측면 돌파뒤 올린 크로스를 김도훈이 논스톱 슈팅으로마무리 지어 1-0으로 승리. 지금까지 브라질과의 대표팀 대결에서 유일한 승리를 거둔 전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스루패스 한방을 보고 많은 팬들은 '어떻게 그 순간 최성용의 침투를 보고 찔러줄 생각을 했을까? 역시 윤정환의 시야는 최고다' 하고 김도훈의 멋진 슛과 함께 칭찬하던 장면이었다.
2002년 4강전에서도 독일 선수들의 허를 찌르는 윤정환의 패스가 있었다면 경기내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 한번의 패스로 인해 칸이 뚫리고 그렇게 해서 최소한 승부차기 까지 갔더라면, 아니 연장전에서도 기운빠진 독일을 밀어붙혀 '대한민국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대사건도 벌이지 않았을까? 어차피 0-1로 지고 있는 상황이니 어차피 질 바에야 모험 한번 해 보는 것도 좋았을텐데 말이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가정을 인정치 않는다. 결승전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히딩크도 아마 그 상황에서의 윤정환의 투입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아쉬운 순간이고 '그 자리에 윤정환이라면?' 이라는 매력적인 가설은 있지만 실현되지 못한...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3-4위전의 언저리 뉴스는 윤정환의 출전여부였다. 이때 윤정환 외에도 현영민도 출전을 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터키전에서...한국은 교체선수를 다 썼다. 79분...후반 32분 설기현과 최태욱이 교체되는 순간. 한국은 교체선수를 다 썼다. 더불어 윤정환의 월드컵무대는 끝났다. 피치에 한번도 못올라본 대기선수로서 말이다.
한 언론사에서는 이 순간 윤정환의 부인이 대성통곡했다고 적었던 언저리뉴스가 기억난다.
아마 당사자 윤정환의 속은 더 끓었을 것이다. 아마도 엄청난 슬픔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윤정환은 생각보다 여린선수다. 그 가슴아픔은 아마도 평생에 갈 것 같다.
한국의 4강진출의 화려함속에 있는 그림자중 하나는 윤정환이었다.
16. 월드컵이후
윤정환은 1973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1972년생이다(나와 동갑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엔 이미 우리나이로 서른줄을 넘은 상황이다.
그는 결국 K리로 다시 돌아왔다. 성남 일화에서 그를 부른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아는 지인들은 "글쎄? 성남에서 윤정환이 뛸 자리는 있을까?"
혹자는 '레알 수원'이라 하지만 내가 볼 때 성남이 갖춘 '초대 피스컵'을 위한 진영은 대단했다. 그때 성남이 여러 대회를 출전하기 위해 갖춘 라인업은 그야말로 유럽의 빅클럽들이 챔피언스 리그 등을 노리기 위해 적용하고 있는 '1진 라인업 3개 만들기'와 비슷한 시도였다.
많은 돈을 받으면서 K리그로 복귀했지만 성남의 팀 플레이 스타일은 윤정환과 잘 맞지 않았고 결국 윤정환은 팀에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윤정환은 전북으로 팀을 옮겼다.
옮기기 전 만날 기회가 있어서 대화하니 윤정환은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날 기용해주는 감독에게 가야지..."
언제나 같은 톤이었지만 뒤의 뉘앙스가 슬프게 다가왔다.
전북에 가서는 부천시절처럼 뛰어난 활약이라던가 팀의 정비에 앞서지는 못했다. 조윤환감독이 니폼니쉬하고 같이 있던 사이였더라 해도 선수구성이 비슷하다 해도 윤정환하고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전북의 저울추는 김형범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윤정환은 점차 뛰는 기회가 줄어들엇고, 결국은 일본의 사간 도스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뛸 수 있는 팀을 원했다. 그러기에 전북으로 이적한 것이었지만, 결국 그의 최종 종착지는 일본의 사간 도스 팀이 되었다.
17. 은퇴
결국 지난달 윤정환은 은퇴했다.
36세의 은퇴, 적게 뛴 것은 아니다. 나이로 볼땐 분명 한계이긴 했다.
윤정환은 이미 선수시절에 많은 부상을 당했고, 그 때문에 많은 기회를 놓친 선수이기도 했다.
윤정환의 에이전트인 이영중씨하고 2001년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전지훈련중이던 때에 만났는데 그날 FC발바이크와의 연습 경기가 있어서 같은 차량을 타고 이동중에 이야기가 있었다.(요거 하고 며칠 뒤에 체코와의 경기에서 0-5로 패했다.)
이때 이영중씨는 "부상만 아니었다면..."하고 한숨쉬던 것이 기억난다. 다른 좋은 팀과의 입단계획도 잡았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다 걸렸다는 것이다. 도무지 선수로서 뛸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이날 경기는 장대비가 내렸는데 경기 내내 비 쫄딱맞으면서 응원했더니만 네덜란드 사람들이 기가막혀 하더라...-ㅅ-
대표팀 유니폼 입고 다니니 기념촬영도 많이 했다. 그렇게 작은 도시에 한 나라의 대표팀이 오는 것도 큰 사건인데 저 멀리에서 경기보러 왔다고 하니 더 놀라더라는 거, 거기다 경기내내 장대비가 내렸는데 그거 통으로 맞고 응원하니 교포분들도 놀라서...결국 한 교포분의 성의를 받아들여 아인트호벤으로 다시 이동해서 그분 집에서 1박했다.
그리고 그날 경기는 전반종료쯤 해서 1-0으로 안정환의 골로 한국 승리.
그런데 그 골이 어느정도냐면...얼마전 보여준 그 페널티 에리어 밖에서의 터닝 중거리포...그거를 하프라인쯤에서 해버린 것이었다. 네덜란드 관중들도 기립박수 칠 정도였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천재로 꼽는 김병수(현 포항2군 코치)도 부상치료를 제대로 못한 채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윤정환도 비슷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린 선수들을 너무 혹사시킨다. 요즘에서야 관리가 들어가긴 했지만...그래도 너무 아쉬운 면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그것만으로도 책이 여러권 나올테니...생략하자)
그러나 부상만으로 모든 원인을 돌릴수는 없다.
그렇다고 윤정환이 모자란 선수는 아니었다.
아마 윤정환의 불운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일 거고, 대한민국의 축구팀이 많은 개성과 다양성을 가지지 못해 윤정환이라는 선수를 담기 힘든 그릇이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가 보여준 개성의 발현과 그것으로 인해 나온 부천의 '목동시대'의 경기들은 그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영원히 '목동시대'를 잊지못할 것이다.
윤정환은 그때까지 한국축구의 지리함을 한순간이나마 깨어버린 선수이기 때문이다.
18. 에필로그
애초에 몇개로 써보자고 한 글이 이렇게 길어질줄은 몰랐다.
쓰다보니 아주 작정하고 옛날 이야기도 많이 넣어보자 싶어서 하다보니 윤정환 본인보다는 '목동시대'의 부천 이야기도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윤정환이 은퇴 하면서 사간도스에서 맡은 일...
아마 그거 때문에 가족들 많이 울었을 것이다.
윤정환이나 윤정환 부인이나 둘다 똑같은게 마음이 아주 여린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다. 분명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들을 아마 자신의 입장에서 되새김질 했을 것이다.
어쨌건, 윤정환이라는 선수 때문에 흥분하고 재미있고 그랬던 세월이 자그만치 14년이다. 거의 한 세대동안이다.
그의 은퇴를 보면서 하나의 시대가 갔음을 다시금 느끼는데다가...
마지막 월드컵과 그 이후를 어떻게 써야 할까로 많이 갈등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쓰지 못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할 부분이 생길것이다. 그때 그 이야기들을 끼어넣어야겠지 하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긴 글 기다려 주시고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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