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천 최악의 1997년
1996년은 한국 축구에 있어서 충격적인 경기가 벌어진 해이기도 했다.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패한 것은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왔다.
올라간 것 자체도 비틀대면서 간신히 와일드카드로 올라가더니만 이란을 만나 전반 이후 와르르 무너지며 대패당한 것이다.
그 경기의 의의라면 역시 이란의 3인방이 모두 득점을 한 경기라 할 수 있겠다. 알리 다에이의 4골 아지지의 1골, 바게리의 1골...당시 바게리는 수비수였는데 한골을 넣었다. 2년뒤 몰디브를 상대로 골 폭풍을 몰아친 바게리가 본색을 들어낸 경기가 이 경기라고나 할까?
4골이나 허용했을 때의 심정을 허기태선수에게 직접 물어보니 허기태 선수는 이 말을 하더라...
"다에이 그녀석이 팔꿈치로 내 가슴을 얼마나 쳐댔는데요!"
뭐 하여간 각설하고...
1997년 부천은 새롭게 팀을 정비한다.
당시 시즌을 앞두고 니폼니쉬 감독을 찾아갔을 때 니폼니쉬 감독에게 '올해 팀의 중점은 어디에 두었는가?'를 놓고 질문했었다.
"올해 부천은 수비에 중점을 둘 것이다"
"오늘 당신이 본 경기에서 우리는 3-0으로 이겼다. 작년 전력이라면 우리는 5-2로 이겼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3-0이다. 골수는 줄었지만 대신 실점을 덜했다. 올해 목표는 조금 골을 덜 먹더라도 수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정환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나의 질문에 니폼니쉬는 그의 윤정환론으로 답한다.
"그에게 특별히 주문할 것은 없다. 그는 자기가 필요한 자리를 알고 경기때 스스로 움직인다. 내가 특별히 지시할 것도 없고 영리하게 위치를 찾아가 있다. 윤정환의 위치는 프리다. 그리고 그랬을 때 그는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다. 그에겐 어떠한 지시도 필요없다. 그 스스로가 경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나는 그 파괴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나머지 방안을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윤정환론은 시즌 초반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
개막전인 아디다스컵은 수원에서 열렸다. 전해 수원에게 많이 발목을 잡힌 부천은 그야말로 벼르고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원공설운동장까지 당일 버스이동이 가능했음에도 부천 선수들은 수원의 호텔에 묵었다. 그야말로 '벼르고 나온' 경기였다.
경기는 내내 팽팽했으며 수원에 압박에 맞서 부천도 맞섰다. 수원은 사이드에서 이병근의 활약을 앞세워 부천의 측면을 파고들었으며 부천은 윤정환 외에도 김기동, 윤정춘으로 공격 방향을 돌리면서 수원의 예봉을 피해나가면서 특유의 '2파 웨이브 공격'을 걸어냈다.
그리고 선제골을 잡아낸 것은 부천이었다. 1997년 시즌 첫 골은 부천의 윤정춘이 뽑아냈다.
공간돌파를 통해 2:1 패스를 받은 윤정춘의 슛은 수원의 골을 갈랐다. 부천의 완벽한 승리로 하는 듯 했지만 수원의 파상적인 공세는 계속되어 경기는 1:1로 끝났다. 하지만 경기 자체는 엄청난 명승부였으며 2골밖에 안났지만 양팀 감독의 공격성향과 미들에서의 경기지향은 K리그의 숨겨진 명승부들을 잔뜩 만들어내는데 1997년 아디다스 개막전은 그야말로 멋졌다.
부천은 이후 대전과 승리 뒤 부산, 천안전에서 비겼다.
그리고 시즌 첫 패는 1997년 4월 9일 포항에서 당했다. 이 경기에서 포항의 홍명보는 플레이메이커로 나섰으나 그의 실력부족을 드러내고 만다. 홍명보의 롱 패스는 훌륭하지만 미들로서의 적응은 번번히 실패햇는데 이 경기는 그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중 하나였다.
홍명보가 있을 때에 포항의 박태하-서효원이라는 양날개는 활용 거의 못했다. 포항은 선제골을 넣었지만 부천의 수비수 보리스에게 세트피스에서 골을 허용하면서 1:1로 끌려나가며 고생했다. 그러나 홍명보가 부상으로 나간 뒤 포항이 180도 달라지면서 부천의 수비를 있는대로 유린하며 3-1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홍명보의 한계가 분명히 보였던 경기가 이날 경기였다. 그리고 더불어 니폼니쉬의 얼굴에서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뭔가 수비 밸런스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윤정환의 균열이기도 했다.
부천의 목동경기에서의 최고 베스트 트랙이 펼쳐진 것은 4월 12일 안양과의 경기, 4월 16일 열린 울산과의 경기였다. 이 두 경기는 K리그 사상 최다 골폭죽으로 기록될 것이다.
Dataman님이 말씀하신 '안양이 캐 발린' 경기가 바로 이 경기다.
7-1
이날 안양팬들은 기록적인 패배로 인해 울분을 토했고 부천 팬들은 신바람을 냈다.
그리고 그 다음 울산과의 경기에서 부천은 4-3이라는 대격전을 승리로 이끈다. K리그 사상 2경기에서 11득점을 낸 경기는 찾아봐도 몇 없으리라. 그 중앙에는 윤정환의 빠른 패스와 예의 '2중 웨이브 공격'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 경기가 바로 이 두 경기였다.
안양팬들도 의아해 했던게 그날 경기에서의 안양과의 볼 점유율은 안양이 뒤지지 않았으며 되려 앞서면 더 앞섰지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부천의 공격이 엄청나게 먹혔던 경기였으며 이 두 경기에서 윤정환의 진가는 더 빛났다. 이 두 경기는 윤정환의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경기였는데 이날 윤정환은 볼 터치를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적인 공격방향전환과 찔러 넣어주는 스루패스의 계속적인 시도로 수비 뒷공간에 대한 공략뿐 아니라 드리블이 아닌 2:1 패스를 뒤에서 들어오는 선수에게 넣어줘서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전략이 그대로 통했던 두 경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경기인 아디다스컵 마지막 경기에서 부천은 밑기지 않는 패배를 하게 된다. 비기기만해도 아이다스컵을 들어올릴 수 있던 부천은 광양에서 전남에게 전반에 2-0, 후반에 4-0...토탈 스코어 6-0라는 엄청난 대패를 당해 1위에서 5위로 추락하고 전남은 6위에서 2위로 점프하는 경천동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부천의 약점은 오프사이드 트랩 문제였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많이 무너졌다. 이 약점은 부천의 치명적 약점이 된다.
이해 부천은 7월까지는 그럭저럭 성적을 낸다. 당시 정규리그와 프로스펙스 컵이라는 2중적인 대회에서 7월까지가 부천의 한계가 되고 만다.
니폼니쉬 감독의 예상과는 달리 수비진이 점차적으로 무너지며 공격도 안풀렸다. 상대팀은 부천의 이러한 전술을 다 꿰뚤어봤으며 윤정환을 견제하면서 윤정환의 패턴을 다 파악해 버린 상황이었다. 여기서 윤정환은 하나의 한계에 부딛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윤정환은 다른 공격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았다. 계속되서 2:1 패스, 2:1 패스, 2:1 패스...이듬해 울산과의 정규리그 개막전(윤정환이 길게 보내준 공이 너무 높아 김병지의 만세골이 작렬한 바로 그 경기다)경기에선 후반전에만 무려 다섯차례의 페널티 에리어 바로 앞에서의 2:1 패스가 나오기도 했는데 다 끊겼다.
중원에서는 다른 방향으로의 돌파는 했지만 페널티 에리어 근방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당연히 2:1 패스만의 고집. 이것이 윤정환의 한계였다. 이때쯤 해서 부상으로 쉴 때 한번 만난적이 있는데 이때 이 이야기를 하니 윤정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상황에서 패스가 뚫리면 상대는 그냥 무너져"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쯤은 드리블 돌파나 중거리를 시도할수도 있는거 아냐?"
"아니지, 한번 뚫리면 다음에도 또 통하거든"
(굵은 글씨가 윤정환의 말, 일반체는 내 질문)
그러나 윤정환의 생각과는 달리 상대 수비들은 이 점을 계속해서 막아버렸다. 중원에서는 예의 윤성효처럼 압박을 들어갔으며 페널티 에리어 부분에서는 윤정환보다는 동료의 움직임을 보고 패스 순간 발을 대서 막아버렸다. 그러면 윤정환을 막을 수 있었다. 윤정환의 파해법이 만천하에 알려진 해가 바로 이 해였던 것이다.
사실 내가 국내 선수들에게 독기어린 소리를 하며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더 수준을 높여야 한다' 라고 시니컬해 하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외국에서의 스타급들은 그 상황에서 다른 해법을 시도한다던가 하는 여러 변화를 가지고 온다던가 하는 '업그레이딩' 작업을 하는 반면 한국 선수들은 거기서 주저앉고 변화를 가져오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나오는 것이 '미완의 대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그런 아쉬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윤정환의 한계였다.
(실은 외국 선수들이 이러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수많은 자원저변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조금 부진했을 때 그 부진을 헤처나오지 못하면 그대로 도태된다. 반면 한국은 '그래도 그만한 선수가 없으니...'계속 쓰는 울며겨자먹기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저변의 문제는 이만큼 크다. 농담삼아 'XX만한 선수는 유럽가면 트럭단위로 나와' 하고 씁쓸하게 난 말한다. 그런데 그게 농담이 아니거든...후우~)
그리고 부천은 10월 5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2-1의 승리를 거둔 것을 마지막으로 3연패. 그중 대전에게 0-3의 대패를 당하기까지 하면서 시즌을 접게 된다.
부천의 1997시즌은 여기서 끝났다.
정규리그 2승 5무 11패 19득점 36실점이라는 초라한 결산표.시즌 초의 니폼니쉬 감독의 '수비 위주'는 공수표가 되었다.
변명은 많았다. 중간에서의 프로스펙스컵이라는 일정이 끼는 것 때문에 집중이 분산되었다느니 뭐니 하는 변명이 있어도 그것은 변명일 뿐이었다. 시즌 초에 보여주었던 전술을 끝까지 일정 레벨 이상 유지하지 못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골잡이의 부재는 컸다. 세르게이의 부진 뿐 아니라 윤정춘의 파행, 권태규의 실질적 은퇴, 등의 사실상 공격수들의 전열 이탈(이 부분은 언제 이야기할 거리가 있을 것이다. 하여간 이해 부천의 공격력은 이원식-윤정환 라인 외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로 인한 공격력 감소, 미들과 수비의 밸런스 균열 등 변명거리는 많았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이다. 분명 윤정환의 한계가 보인 것이 1997이었다.
그리고 윤정환 개인적으로의 잊고 싶은 기억인 차범근호의 승선, 그리고 차범근 감독과의 불화 문제가 불거진 것도 바로 이 해가 된다.
차범근은 윤정환을 놓고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차라리 고종수는 성격이 쾌활해서 그러한 이야기를 했을 때 먹혔는지 아닌지를 알수 있지만, 윤정환의 경우는 속으로 안고가는 스타일이라서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인건지 아닌지 알수가 없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내성적인 성격은 윤정환에게 있어서 마이너스인점은 분명하지만 이걸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사람의 개성이라던가 성격이라는거이 쉽게 바뀌는게 아니니 말이지...
여하간 1997시즌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윤정환은 1998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1998년은 부천 목동시대의 내적 충실이 가장 충실한 해가 된다.
그 전기는 중고신인 이을용의 영입이었고, 이것은 니폼니쉬의 윤정환 론에서 '그의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덧글
Sporting 2008/03/13 23:03 # 답글
으음.. 저 당시의 윤 선수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군요.확실히 'XX만한 선수는 유럽 가면 트럭 단위..' 이 얘기는 농담이 아니죠;;
얼마전 박주영이 한창 뜨고 있을때 누군가 EPL 스카우트에게 물어보니, 저 정도는 3부리그에서도 널렸다고 (..)
홍돈 2008/03/13 23:05 # 답글
역시 엄청난 글입니다 ㅎㄷ저때의 이야기들은 그냥 풍문으로만 전해들은 지라 이렇게 보니 참 색다르게 와닿는군요.
홍차도둑 2008/03/13 23:13 # 답글
Sporting님...비슷한 이야기를 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다가 2006년 초반에 전 매장당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제 말대로 되었지만요. 언제나 그렇지만 트로이의 카산드라는 환영받지 못하고 기억되지도 않지요. 다들 이러죠 '재수없는 소리 그만해'홍돈님...더 비화도 많지만 공개 안하는 것도 많습니다. 저땐 숙소에도 자주 가고 밖에서 이야기도 좀 하고 그러던 때였거든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합니다만...그건 언젠가 풀어쓸 날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커월드 같은 곳은 가기가 싫습니다.
比良坂初音 2008/03/14 00:30 # 답글
확실히-;; 지나치게 안전빵(?)에 안주하려는 성격이 국내선수들은 너무 강하지요게다가 조금만 튀면 안팎으로 까임과 조짐을 당하는 일이 더 많으니 말입니다;;
Recce 2008/03/14 02:32 # 답글
글 잘보고갑니다. 96년, 97년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던 제가 경기장을 가장 많이 찾았던 때였네요. 그만큼 경기도 재미있었는데 말이죠. 어렴풋 나던 기억이 좀 더 생생해지네요.^^
홍차도둑 2008/03/14 16:16 # 답글
하츠네님...아쉬울 뿐이죠, 세계수준의 벽은 너무 높게만 보여집니다...Recce님...혹시 거기서 북치던 덩치 큰 사람 기억하십니까? 그게 저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