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중적인 파울과 태클, 그러나 아무도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이해 본격적으로 부천과 수원은 여러가지 면에서 궤를 같이가게 된다.
하이텔에서 시작된 서포터 운동은 수원-부천으로 확정을 짓게 되며 수원은 그랑블루의 활동이 이해에 시작된다.
이 결성을 놓고 붉은악마 홈페이지에도 걸려있는 '칸타타 선언'이 대학로의 PC통신 카페 '칸타타'에서 이루어졌다.
실은 이 당시 칸타타 지배인을 내가 하고 있어서 축구동 망년회를 여기서 한 것이었다. 그때 준비 이거저거 많이 했었고 선언문도 준비를 당시 축구동 운영진들이 하게 된다. 이때 업저버로 참여한 분이 창단하여 1996시즌부터 리그에 출전하게 되는 수원팀의 리호승부장(당시 대리)님과 부천의 김시문대리(1997년에 조기퇴직하신 뒤 1998 붉은악마 원정의 단장을 맡으신다. 이후 개인사업을 하시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가셨다)님이 참가하셨으며 이때 수원서포터의 첫 발걸음이 내 딛게 되는 구단 마케팅에 대한 여러 설명을 하셨다.
이로인해 전반기 얼마동안은 수원서포터 분들 중 일부는 목동도 찾아오시면서 양다리 걸치는 응원을 하시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두집 살림은 하기 힘든' 면이 있는지라 이때부터 부천과 수원서포터는 확연히 구분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이 붙었다 하면 경기 내용도 '미드필드의 장악을 위한 싸움'으로 집약되는 경기내용, 수원의 그 많은 인원의 서포터+부천의 적지만 그래도 대응해 줄수 있는 집단 이 있어서 경기장은 지금에 비하면 무척이나 적더라도 분위기는 좋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부천 팬 입장에선 수원하고 경기할 때 윤성효선수의 집중견제가 너무나도 아쉽기도 했다.
전반기, 정확히 아디다스컵에서 보여준 부천의 미드필드의 위용은 대단했고, 그 중심축으로 지목된 윤정환을 막기 위한 타 팀의 견제는 지독했다.
왜 대한민국에서 테크니션 미드필드들이 나오지 못했는가?
에 대한 답이 흔히들 '감독들이 쓰지 않는다' 라는 답이 나오고 그 과정에서 여러 지도자들을 향해 욕설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김두현 선수가 "잉글랜드 선수들보다 K리그 선수들이 기술이 떨어지지 않다. 아니 기술만으로는 K리그 선수들이 앞선다"라는 말을 했다. 이것에서도 이면을 살펴보자면 그 잘난 기술 발휘할 틈을 안주는 것이 현대축구다. 김두현 선수의 발언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테크니션들이 살아남기 점점 힘든 시대이며 테크니션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파워를 겸비한 테크니션들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지단? 지단을 테크니션이라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선수다. 그러나 지단이 왜 지금의 축구에서 테크니션으로 불리어지느냐면 '상대 수비의 견제를 뚫을 파워'를 지닌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동시대에 프랑스에선 테크닉으로만 따지면 깔리에르 같은 선수도 있었다(낭트 소속으로 2000년 프랑스 FA컵에서 '칼레의 기적'의 최종장을 찍은 낭트를 지휘한 선수다. 이 선수는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출전하여 지단 대신에 프랑스 미들을 비에이라와 함께 지휘했다. 그가 펼친 부드러운 볼 터치와 드리블, 매끄럽게 이어지는 패스들은 대단했다. 지단은 이에 비한다면 엄청 투박한 선수다. 지단에게 '창조적인 축구를 하는 선수'라는 말처럼 왜곡된 이미지는 없다. 지단이 '창조적인 축구'를 할수 있었던건 마크맨을 돌파해버렸기 때문에 나온 공간과 타이밍을 이용한 결과였다. 물론 이것도 대단하지만 지단 앞의 선배인 플라티니에 비한다면 지단은 창조적인 면이 많이 떨어진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루이스 피구다 원래 포루투칼은 루이스 피구 보다는 후이 코스타를 더 높게 쳤고 1989,1991년의 청소년대회 2연패의 '골든 에이지' 멤버들 중에서 먼저 뜬건 코스타다. 그러나 대표팀에선 별 볼일없는 활약을 하다가 팀 스타일을 바꿔버린 1990년대 막판에 가서 포루투칼이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왜냐? 코스타가 테크닉은 좋아도 그 테크닉 발휘하기 전에 압박 들어오면 꼼짝을 못했다. 반면 피구는 이러한 수비수의 압박을 자기도 같이 몸싸움 하면서 뚫어버리는 선수였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의 '압박축구'는 이러한 파워를 같이 동반하는 선수가 아니면 그라운드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랬을 때 각 팀의 테크니션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은 동일했다.
혹시 NHL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를 아시는가? 그리고 그의 대항마인 마리오 르뮤 도...이들이 소속된 팀에선 전담맨을 두었다는걸 아시는가?
좀 뭐라하긴 그렇지만 누가 웨인 그레츠키나 마르오 르뮤에게 좀 거세게 파울을 했다 하면 소속팀 선수들이 전부 달려나와서 패싸움(이거 어찌 보자면 아이스하키의 전통이자 또다른 볼거리라고 한다면 할수 있지만)하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여기서도 첫 빠따를 날리는 선수들이 있다. 이 선수들은 그 팀 안에서도 알아주는 '웨인 그레츠키 빠돌이', '마리오 르뮤 빠돌이'라 할수 있는 선수들이 그 선봉장을 자임하였는데 이 선수들은 대놓고 이랬다.
"이런 위대한 선수들에게 부상당할지도 모르는 파울을 하다니! 아무리 팀의 승리가 중요하더라도 이래선 안된다!"
하면서 웨인 그레츠키나 마리오 르뮤를 함부로 건드렸다 하면 '일단 한대 맞고 이야기하자' 하고 주먹부터 휘두르던 선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퇴장을 당해도 좋다. 하지만 내가 그레츠키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들은 그래츠키를 부상시켜서 은퇴시킬 것이다"
라며 악역을 자처한 인물들이었다.
수원에서 이러한 악역을 자처한 선수가 윤성효였다. 당시 수원의 미들은 루마니아의 특급 조율사 바데아가 지키고 있었으며 바데아를 지키면서 상대 키 플레이어를 막는 역할을 윤성효 선수가 하고 있었다. 반면 부천의 경우는 팀 밸런스는 맡았지만 그렇게 상대 선수를 박살내는 '전문적인 박살내기' 선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있긴 했는데...앞서 말하지 않았는가...그런 선수들 1995년을 기점으로 다 은퇴했다고...
그러다보니 윤정환에게는 계속해서 태클이 들어왔다. 견제도 심했다.
공이 윤정환에게 온다 싶으면 태클이 들어오고 밀쳐서 넘어뜨렸다. 윤정환이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던 것은 테크니션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수비에 참가 안했기 때문도 아니다. 체력이 약해서도 아니었다. 바로 이러한 몸싸움을 뚫고 나오는 면의 부족이었다.
물론 뛰어난 선수는 그러한 것도 피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옛말이 되었고, 축구도 농구와 마찬가지로 거친 몸싸움을 계속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고 동료의 패스를 받고 패스를 받거나 드리블을 하고 슈팅을 하면서 '골'을 만들어 가는 그러한 상황으로 변한건 오래되었던 것이다.
최근의 가장 비슷한 예로는 미들스브로로 간 이동국을 들 수 있겠다. 수비수하고 몸싸움 한번 하면 비틀대지 않는가? 딱 그러한 모습을 윤정환은 보여주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윤성효 선수도 대단한 것이 윤정환은 기본적으로 발이 빠른 선수다 컨디션 좋을 때엔 100m를 10초대 초반으로 끊어버리는 선수인데도 그 스피드로 일찍 자리잡고 빨리 움직이려 했는데도 윤성효선수는 그걸 잘 따라가서 막아주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악역'인 선수라 하더라도 그러한 윤정환의 움직임을 따라잡아버렸다는 것은 윤성효 선수도 기본적으로 기량이 있는 선수라는 거다. 하여간 자기가 아무리 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공을 잡기 위해선 일단은 몸싸움부터 하는 것이 현대축구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이건 유럽이건 어디건, 테크니션으로 훌륭한데 몸싸움 면에서 좀 그렇다 싶으면 지체하지 않고 그를 뒷받쳐주는 수비형 미들을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비미들은 언제든지 그를 보호해준다. 윤정환과 이관우로 대표되는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들을 활용하는 감독은 팀 밸런스 차원에서 그렇게 조합을 만들어 왔던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잠깐? 그럼 고종수는 뭐냐고? 고종수를 플레이메이커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고종수는 기본적으로 플레이메이커라기 보다는 쉐도우 포워드로서의 활동폭을 지닌 선수다. 윤정환-이관우하고는 약간 궤도를 달리하는 선수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몸싸움을 싫어하지는 않았던 선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때문에 윤정환의 1996년은 올림픽 이후 계속되는 집중견제로 빛을 잃어갔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조윤환 코치는 "우리 애들이 너무 순해서요..."라면서 불평을 하기도 했다.
실은 조윤환, 최윤겸 코치도 선수시절엔 좀 날리던 수비수들이었다. 상대가 좀 심하게 태클했다 하면 '버럭!' 하면서 한 성깔 하던 선수들이었는데...그러한 '독기'가 없었다는 면을 두고 조윤환코치는 '목동시대' 내내 아쉬워하곤 했었다.
(물론 역사가 가정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부천유공의 선수들이 좀 그러한 플레이가 있었다면...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아마도 니포 감독이 허락안했을 것이다. 그분은 '그렇게 축구하느니 안하고 만다' 가 지론인 분이기도 했거든...)
그리고 부천도 후기리그에서 선두경쟁을 달리다가 뒷심부족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윤정환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부천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해가 되는 1997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덧글
겜퍼군 2008/03/13 17:10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比良坂初音 2008/03/13 17:23 # 답글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계시군요^^ 저도 지단이 결정적으로 뜰 수 있었고 테크니션의 대표주자쯤 되는 존재가 된건개인 기량보다는 그 피지컬 덕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볼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도 상대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앞에는
똑같이 힘으로 버티고 벌어낸 시간에 플레이를 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죠
그게 EPL에서 테크니션이 살아남는게 극도로 힘든 이유기도 하지만서도;;;
(EPL이 거칠다 거칠다 해도 어디까지나 라리가에 비해서 매우 투박하고 세리에에 비해서 교활하지 못한거 뿐이죠;;)
......뭐 아스날 같은 특수 케이스도 있긴 합니다만서도;; 얘들도 노골적으로 공이 아니라 사람을 조지는 축구였다면 답 없었을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어릴때부터 선수들의 몸을 제대로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혹사나 시키고 있으니 말이지요;;
(하긴 아무리 잘만들어줘도 근본적으로 나이는 무시할 수 없다는게 리오넬 메시가 증명하고 있습니다만;;;)
Dataman 2008/03/13 17:25 # 답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조윤환 감독 수비수시절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나는데, 혹시 양원석님께서 쓰신 것이던가요.
Dataman 2008/03/13 17:26 # 답글
덧. 그 최악이 되는 97년의 부천에게 '캐발리는' 팀도 있었습니다-_-;;
홍차도둑 2008/03/13 17:44 # 답글
갬퍼군님...넷 ^^ 종종 들려주세요 ^^하츠네님...그렇죠, 정말 테크니션들은 1990 월드컵을 기점으로 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 마라도나의 마지막 약물반짝임이 그 마지막 장을 찍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프리킥도 1990년을 기점으로 해서 아름다운 곡선구는 거의 안나오고 있는데 지금 프리킥들을 보면서 '엄청난 커브'운운할때마다 웃겨 죽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힘으로 버티고 벌어낸 시간에 플레이를 하는 것. 그것도 쉬운 기술은 아니지만, 아에 그러한 짬 자체가 별로 안나온게 요즘의 축구죠...
Dataman...음? 내가 그런글을 쓴적이 있던가? 조윤환 이야기 쓴적이 있긴 한데 국대 수비수때 이야기야 대학때 한일전 골 집어넣은거로 반짝 했던거 외엔 쓴적이 읎는데...-_-? 그것도 하이텔에서만 썼었어요.
그래도 부천 역사상 그 최악은 그때밖에 없었지, 그때 대전이 만세 불렀고...그런데 요즘은 제주로 가더니만 맨날 꼴찌에서 놀기 바뻐서리...후우~
나상 2008/03/13 19:36 # 답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얘기들을 자세하게 알 수 있어 좋군요. 잘 읽었어요-
ilha 2008/03/13 19:4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1997년의 스토리가 기대되는군요..
홍차도둑 2008/03/13 22:43 # 답글
나상님...잘 읽으셨으면 추천좀...^^ 제 생각으로도 이런 이야기는 아마 축구 사이트 어디에 가도 없을 것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이기도 합니다.ilha님...일단 올렸습니다. 오늘 안으로 끝내버릴까 했는데 다른 일이 들어와서 돌갔구만요...T_T
dsds 2010/07/09 21:23 # 삭제 답글
지나가다 댓글답니다. 윤정환선수가 100m 10초 초반을 끊는다고요? 한국 100m육상 최고기록이 10초 23인데요...
홍차도둑 2010/07/10 15:19 #
본인이 직접 말한 부분입니다.^^ 약간 과장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도 약 10초 대라고만 생각해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당시 한국 기록은 10초 34이지요 ^^ 올해 10초 23이 기록된것이니까요 ^^ 보통 11초대인데 그게 아닌 10초대로 진입했다고 한다면 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