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환에 대한 이야기 - 1 축구이야기

윤정환에 대한 이야기

방금 뉴스를 보니 윤정환이 은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간 도스에서 은퇴한 윤정환...
나이게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 윤정환이기에 다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길고 진하게 써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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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나한테 윤정환이라는 선수가 각인된 것은 1994년인가 1995년이었을 것이다. 이때 미국월드컵과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월드컵에서는 기술고문, 아시안게임에선 감독을 했던 구 소련출신의 감독 아나톨리 비쇼베츠(이 사람이 1988올림픽때 소련의 금메달을 땄을 때의 그 감독이다)를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이때부터 1996 올림픽 대표팀은 그 여정을 시작한다.

이때 호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일본과 맞대결을 하는데 한국이 1-0으로 승리한다.

이날 떠오른 선수가 셋이니, 일본의 파상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낸(골대 덕도 좀 있었지만) 장신 골키퍼 서동명(서동명의 등장을 놓고 김풍주 이후 오랫만의 190대의 골키퍼로 기대만빵이었다)과 골을 넣은 최용수, 그리고 윤정환이었다.

당시 윤정환의 플레이를 놓고 해설자와 캐스터는 칭찬을 했다. 사실 그날 난 하이텔에 '승리의 일등공신'을 놓고 서동명을 꼽았지만 ^^

그리고 그 당시 하이텔 축구동호회에서 처음 시작된 서포터 운동은 유공을 첫번째 타켓으로 잡았으며 작으나마 지금의 서포터의 시작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쯤 난 낫소(맞다, 공 만드는 메이커다. 축구 좋아해서 축구공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었다...^^)를 퇴사했던 때였다.

당시 4순위로 윤정환은 유공 유니폼을 입게 된다. 4순위라 해서 놀라지 말지어다. 또다른 정환, 안정환도 4순위었다. 당시 4순위는 연고지 지명으로 지명된 학교에서 선발한 것이다. 어찌 보자면 1순위와 비견될 만 했다.
사실 부천의 연고는 윤정환이 소속된 동아대->인천대 등으로 옮긴다. 옮겼을 때마다 꼭 그 학교에 굵직한 선수가 있었길래 제주로 옮겼을 때 난 농담삼아 이런 말까지 했었다.

"심영성이 잡으러 간건가?"
(물론 아닐 것이다. 나는 왜 SK가 제주로 연고이전을 했는지는 모른다. 물론 그 면에서 긍정적, 부정적인 면은 있다. 그 건에 대해선 이 글에선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답글 다시는 분들도 그 점은 언급하지 않으셨으면 싶다)



2. 당시 부천 코치진의 사정-외국유학이 만능약은 아니다.

당시 윤정환에게 유공은 많은 선투자를 한 끝에 잡았다.
유공은 김정남 감독이 그만둔 이후 박성화-니폼니쉬로 감독 바통이 옮겨지면서 다른쪽으로 신경을 많이 쓴 팀이었다. 니폼니쉬를 영입한 이유중 하나가 '코치한번 제대로 키워보자' 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라. 감독 한명이 옮겨지면 코치들은 가신처럼 그 감독을 따라다닌다. 우리나라는 거의가 그렇다. 사실 조윤환 코치도 그때 박성화 감독을 따라가려 했다. 그때 유공 프런트진의 설득으로 남은 것이다.

조코치와 유공 프런트진으로부터 동시에 들은 이야기로 대조한 것이니 이것은 진실이다. 대놓고 말한 것이다.

"그래 너 박성화 감독 따라간다 치자, 박감독 유학가는데 너도 갈거냐?"
조코치는 갈거라고 했다. 그러나 구단의 이 말에 따라간다는 설득성을 잃고 만다.

"너 영어 잘해?"


자 다시 생각해보자 가르쳐 주고 싶어도 다른나라 사람이 가르친다면 이거 말을 알아나 듣겠는가? 배낭여행때는 괜찮다고? 바디랭귀지로도 가능하다고? 그런 말을 한 분껜 이렇게 말씀드리겠다.

"여행하고요, 먹고 사는거하고요 같나요?"

다른것이다. 유공은 조코치에게 니폼니쉬 감독이 온다고 했다. 1990년 월드컵에서 '카메룬 돌풍'을 이끈 바로 그 니폼니쉬 감독 말이다. 구단은 통역도 붙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감독에게 배우라는 것이다. 1년 유학가봐야 6개월은 말익히기도 바쁘고 그리고 나머지 기간동안 배운다 해도 사실 6개월 속성코스로 말을 익혔을 때 기술습득은...힘들다. 괜히 일본어 자격증에서도 2급,1급 따로 놓고 1급 딴 사람들만 고등교육기관 입학 가능으로 만들어 놓은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역이 있어서 내 말을 잘 전달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배우는 사람이 세계적인 지도자다? 이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당시 부천에서 니폼니쉬에게 통역으로 붙여준 강창석씨...정말 유공은 대단한 통역을 잡았다. 왜냐. 이 분 대학다닐때부터 축구광이었던 분이다. 어쩌다보니 한국일보에서 근무할 때 강창성씨의 동기를 알게 되었다.
그분 왈 "강창성씨는 대학 다닐때부터 축구광이었구 축구도 하라 하면 과대표였어, 그리고 경기장에서도 날라다녔고"
이거 중요한 이야기다. 왜냐면 통역이나 번역에서 중요한 것이 여러 뉘앙스의 전달, 적절한 단어선택이다. 사실 이거 때문에 난 한때 대원에서 만화번역에서 용어잡아준 적이 있다. 그 작품이 바로 '휘슬'이다. 번역하시는 분이 그런 단어 몰라서 적당적당히 하고 했던거 다 잡았다. 그러다보니 한 6권 넘어가니까 봐줄 것이 없더라...그 번역본이 번역하신 분에게도 전달되니까 말이다.
언제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바둑에서도 일본 기사를 인터뷰 할 때 준비된 통역이 바둑용어를 모르다보니 번역하다가 막 막힌 짜증나는 것을 생중계로 본적이 있다. 그냥 '러시아어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광이라서 그들이 쓰는 여러 표현들을 양쪽에 적절히 번역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통역으로 잡은 것이다.
이것을 '당연하다' 라고 할지 몰라도 지금이나 그때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담 하나. 슈팅, 슈팅코리아의 구천산 감독에 대해 기본적인 베이스는 니폼니쉬 감독을 깔고 간다. 연재중에 전세훈 작가님과 니폼니쉬 감독의 만남을 주선했으며 그러한 공식적이지 않은 부분에서도 강창석 통역은 훌륭한 통역과 열의를 보여주셨다. 그분이 축구매니아가 아니었으면 분명 불가능했을 부분이다.)
유공은 니폼니쉬 감독을 모시고 올 때 많은 부분을 준비해 가지고 있었다. 이점은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한때 전북의 코칭스탭 중 한분이 독일 프로팀들의 훈련스케줄 및 각종 훈련방법들을 한 축구잡지에 소개했었다. 그분 독일 유학기간 오래이신 분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다 익혀가지고 오신거다. 1년 경력? 그거 웃기는 일이다.
더한일도 많다. 언젠가 소개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지도자들이 그렇게 나가서 공부한다...라고 하지만 하는건 프로축구 경기 보고 훈련장 나가서 얼쩡거리다가라도 오면 다행이다. 요즘들어서야 많이 달라졌겠지만 옛날엔 놀다온 뒤 일정한 코치 라이센스나 그런 '인증샷' 없이 놀다 온 분 많으시다.

어이쿠...윤정환 이야기 하다가 왜 엉뚱한대로 너무 새 나갔다. 다시금 윤정환에게로 이야기 주제를 돌려보자.

하여간 윤정환이 입단 한 뒤 유공은 팀의 밸런스를 바꿔가기 시작한다.
이제 1990년대 초반을 아로새긴 유공의 올드 멤버, 유명 스타(라 봐야 공격의 황보 관, 수비의 허기태 등이 있었던 때다.)들이 사라지고 윤정환을 주축으로 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 시작은 1995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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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比良坂初音 2008/03/13 14:07 # 답글

    지도자 교육이라면서 실상으로는 나가서 놀다온걸로 밖에 안보이는 국내 지도자들 참 많죠 네에(......옆산)
  • Sporting 2008/03/13 15:13 # 답글

    윤정환.. 제가 처음 축구를 좋아하게 만든 선수이지요. 그리고 축구는 골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 즉 어시스트가 축구의 꽃이라고 지금도 믿게끔 만들게 해주신 선수이구요. 윤정환의 골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그 당시 선수들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었죠. 물론 그것은 요즘에 와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럽 축구를 보다보면 가끔 윤정환 선수가 그 당시 보여주었던 환상적인 패스가 가끔 나올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윤 선수가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아쉽게도 여러모로 운이 없었던 선수입니다만, 사실 운 없는걸 따지자면 그보다 더 운 없었던 선수가 많았으니까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비운의 천재..라고 해야 할까요. ^^; 다시 한번 윤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싶습니다. ㅠㅠ
  • 푸른별빛 2008/03/13 16:16 # 답글

    통역의 중요성은 코엘류감독의 실패와 파리아스 감독의 성공 사례에서도 볼 수 있죠. 코엘류 감독의 경우 통역하셨던 분이 제대로 의사전달을 못해서 사실상 코치진이 감독에 준하는 행동을 한 반면 파리아스 감독은 물론 실력도 좋지만 좋은 통역(나영준씨) 덕분에 선수들이 감독이 의도한 바를 잘 따라올 수 있었구요. 위에 글에 나온 강창석씨 지금은 어떤 일을 하실까요?
  • 홍차도둑 2008/03/13 16:17 # 답글

    푸른별빛님...네 강창석씨는 지금 러시아와의 무역을 하는 회사에서 마찬가지로 통역에 준하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
    지금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때때로 소식은 들어오고 있습니다 ^^
  • 홍차도둑 2008/03/13 17:40 # 답글

    하츠네님...몇명 알고 있습니다. 한때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선수가 그런 양아치짓 하는거 보고 들으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안경소녀교단님이 장외룡 감독님 유학가는 거에 대해서 너무 긍정적으로 보실 때 답글을 약간 삐딱하게 든 것이기도 했죠...

    Sporting님...뭐랄까...그런 이야기들을 다 쏟아내 볼 생각입니다. 아마 인간적인 이야기도 나올 겁니다. 속 상합니다...그거 생각하면요 T_T 그나저나 첫 발걸음이신것 같습니다. 종종 놀러오세요 ^^
  • 사냥꾼이너무많다 2008/03/14 09:57 # 답글

    이런 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ㅁ;.. 사실 90년대 하이텔 축동 시절 유저들과 작금의 여러 축구 유저들간의 경계가 너무 두텁게 느껴지거든요. 여러가지로 아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글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고요 ..
    이런 단절 상황을 극복하려면 역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이런 글은 소중한 것이지요 ;ㅅ; 홍차도둑님이 글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ㅁ^ 그러고보면 조윤환 감독도 요새 뭐하나 모르겠네요. 하얼빈 감독으로 갔다는 소식이후로 실종 ;ㅅ;..
  • 홍차도둑 2008/03/14 16:20 # 답글

    사냥꾼이너무많다님...감사합니다. 음 역시 90년대의 하이텔 멤버들과 지금의 인터넷 유저들과의 차이점은 많죠...축구에 대한 정보 입수 방법도 달랐고, 지금이야 인터넷 뒤지면 딸깍 하고 한번 하는 것을 별 생난리부르스를 해야 간신히 받을까말까한 때하고의 정보량의 차이도 큽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악조건에서 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 다시 돌아볼땐 '내가 미쳤지...'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조윤환 감독은 지금 뭐하는지 저도 하얼빈에서 스톱. 송청운형에게 뚜구당이나 해야 할까봐요 ㅎㅎ
    하이텔에서 자주 중국축구소식 올려주고 티탄저우보 기자였던 송청운형은 지금 중국 2부리그팀의 구단주이십니다 ㅎㅎ 북한 대표팀이 그 팀에서 전지훈련을 했고(지금도 하고 있을걸요?) 해서 북한 대표팀 정보도 들어오는데 그건 현재 엠바고 상황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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