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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전설 이후 간만에 웃어보는... 주인장 일기



아 역시 조석 클라스...ㅋㅋㅋㅋㅋ

자동차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기술 주인장 일기



이 글에 대한 부분인데.
내가 답글을 단 '중요한 기술' 이라는 것이 과연 무었이었을까요?
제임스 와트가 실용화시킨 그 기술이 물론 당시 증기기관에 비해 엄청난 효율을 만들어 내면서 빠와/연료 비가 엄청 올라가면서 제임스 와트가 '제대로 만든 증기기관의 발명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게 교통수단으로 넘어가면 '와트의 증기기관'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기술이 있습니다.

이전의 '대량교통수단'및 '운송수단'에서 첫손 꼽는 것은 수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기차라는 육상교통의 혁명을 이뤄내기 전에는 대량운송과 '스피드 운송'(이게 중요)의 주역은 강이나 운하(가끔가다 바다)를 통한 수운 의존도가 컸지요. 엄청난 원자재를 필요로 하는 공장은 강가를 끼고 만들어졌고요.(현대는 '바다'라는 것을 끼는 것도 비슷한 이유)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우게 되는 중심지에 대한 산업분포관련 그림을 기억하실텐데 거기서도 꼭 들어가 있는 것이 '강이 있을 경우'가 깉이 나오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로마시대때에는 어느정도 육상교통을 통한 물자 운송이 어느정도 있었지만 이게 도로 유지라는 것을 통해 가능했던 것을 감안해야 하는데 로마제국 이후 로마의 도로들은 관리가 X판 되면서 운송의 속도와 '물량'이 산업혁명기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중세시대때에는 로마때만 못했다는 것은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많이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이게 심지어 '전쟁'에도 영향을 줄 정도가 되었던 것이 길이 진창이 되는 것을 피해 '전쟁을 하는 계절'이 따로 있었을 정도가 되었던 것도 바로 이 '도로상황' 때문인 것이었죠

도로가 제대로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길이 진창이 되었지만...여기서도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파팽이나 와트 시절이 아무리 산업혁명 초기고 근세라 해서 중세보다는 '나을'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당시 도로 기술은 제가 뒤에 이야기하는 기술자가 나오기 전까지 중세때에 비해 크게 발전한 것은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도로가 최상의 상태에서도 도로가 이겨낼 수 있는 무게 한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가도가 중세 들어서 많이 파괴되고 복구가 어려웠던 이유중 하나가 로마 때보다 마구가 발달되어 더 많이, 더 무거운 짐을 옮기게 되면서 상층부의 돌 포장이 박살나고 그걸 복구하지 못하면서 도로가 빠르게 붕괴된 것이 큰 이유로 꼽히는 판이며, 로마시대 이상의 '기술'이 나오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을 잊으면 안되는 거죠.


현대에서도 통행량 많은 도로에 가 보면 자동차 바퀴자국처럼 도로가 음푹 패여서 쭈욱~ 고대 로마도로에 파놨던 차바귀자국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전문용어로 rutting 이라 하죠. 아스콘에서도 그런 정도가 생길텐데 일반 흙바닥에선요? 거기다 고무 타이어도 없던 시절에요?...그 당시 마차나 수레에 증기기관 올려놨다간 그냥 개미지옥 빠지듯이 푸욱 가라앉습니다. 그만큼 안습한 도로사정이었어요. 이건 와트의 증기기관이 효율이 좋았고 점점 소형화 되었다고는 해도 당시 마차 등의 도로교통수단에 그 엔진을 싣고 달리려고 하면...딱 이거 생각하시면 됩니다. 1차대전때 영국의 Mk1 전차가 캐터필더가 있음에도 푹푹 빠져나가고 2차대전의 라스푸티차 생각하심 되요. 나폴레옹 전쟁때에 라스푸티차 이야기가 덜 나오는게 서로가 똑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의 '차별'상황이 아니었거든요...양쪽 다 똑같았어요.
그러나 2차대전때 라스푸티차가 강조된건 소련은 그나마 운영하는 자기네 철도 이용해서 물자 실어날랐고 독일은 소련 철도 이용하려고 했더니만 아 씨바 표준궤가 아냐...소련 기차나 화차 사용하지 않으면 물자 못옮기는데 소련놈들이 남겨놓지를 않았네...어찌 찾아내도 그 숫자가 존내리 적네...그래서 도로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져서 라스푸티차 걸리면 존내 고생한거죠.


그러므로 와트가 아무리 효율 높인 증기엔진을 만들었어도 퀴뇨놔 와트 시절의 도로 사정에선 당시 증기기관을 능가하는 마력을 내는 내연기관을 가져와도 도로교통이나 철도 교통은 힘을 못쓰는 것이 18세기...
그정도 무게를 버텨낼 도로 자체가 극히 드물던 시절이에요.

퀴뇨의 명예를 위해서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안하는 부분을 말하자면 퀴뇨의 증기 자동차의 속도가 시속4km 정도였습니다. 근데 그 당시의 그런 수레, 마차들의 평균속도가 얼마였냐면 시속 1.5km였어요! 퀴뇨의 증기 자동차의 속도만 본다면 당시 수레를 쳐바르는 수준이었습니다.(대부분의 서적에선 그런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
퀴뇨의 증기 수레가 '최초'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에 남은게 아닙니다. 당시 '퀴뇨의 교통사고'관련 문서를 봐도 퀴뇨의 증기 자동차가 '괴물'로 묘사될만큼 빨랐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입니다.
괜히 '고대 로마 도로로 이동하는 군단은 산업혁명 이전 중세 유럽의 이동속도보다 빨랐다'는 이야기가 나온게 아닙니다. 실상이 그랬거든요! 시속 1.5km!

퀴뇨의 자동차가 문제가 된건 당시 제동장치나 조향장치 문제가 아니라 기관의 무게였습니다. 도로 상태가 조금만 나빠져도 쳐박힐 정도로 차량의 무게가 나간 겁니다.
철도교통도 비슷했습니다. 나무 레일과 조잡한 주철강 레일이 있었습니다만 어느정도 이상의 무게는 받칠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스티븐슨의 초기 기관차는 레일 뽀샤먹었고 땅 사정때문에 '탄광'에서 운영했습니다. 암반을 깎거나 채광을 위해 팠던 돌들을 쌓아서 어찌어찌해서라도 수평을 맏추고 '돌바닥이니까' '짐과 궤도차량 자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던 지반' 이었기에 가능했던 거였습니다. 이걸 지금의 일반적인 노면으로 옮길 기술이 없었어요.

그 부분이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증기기관 즉 '자연의 1차 동력을 이용하지 않은 운송수단'의 첫 발을 끊은 것이 바로 '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배는 그런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거든요! 거기다 강이나 바다는 땅과는 달랐거든요!
풀턴 이전에도 빠뺑이 수상 교통에 초기 증기기관을 사용하려 들고 했던 이유가 당시 도로는 그런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엔진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도로가 문제였던 겁니다!
도로가 그때까지보다 더 큰 하중을 받쳐주지 못하면 아무리 끝내주는 엔진을 가지고 있어도 써먹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철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가 실용화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술'은 당시의 엔진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도로 문제'입니다.


그걸 해결한 용자가 누구냐!
바로 '매캐덤' 이라는 사람입니다. (John Loudon McAdam)

이 기술자는 로마시대의 기술보다 더 싸게 도로건설을 할 수 있고, 배수가 잘 되고, 더 큰 하중을 받쳐줄 수 있는 도로설계를 하는데 성공했거든요.
그래서 아예 대놓고 '매캐덤' 방식이라는 도로가 있습니다. 지금의 아스콘 직전의 아스팔트-자갈 도로도 매카덤이 만든 방식에서 타르를 사용했다가 아스팔트로 바뀌면서 발전된 공법입니다.
(그래서 지금 도로건설 장비 중에 '매캐덤 롤러'라는 장비가 있을 정도입니다)

지면보다 높게 노반을 쌓고(이건 고대 로마 도로도 마찬가지) 돌을 직경 5~8㎝ 크기로 부숴 20㎝ 두께로 깔아 두번째 층을 만듭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위에 2~3㎝의 돌이 서로 맞물리도록 배열하며 5㎝ 두께가 되면 롤러로 다지는 방법으로 도로를 만듭니다.
이 공법이 나온게 1783년입니다. 퀴뇨의 자동차는 1769년입니다.
그리고 이 공법이 '끝내준다!'고 인정받아 영국의 모든 도로에 적용하게 된게 1815년입니다.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도로정비 예산'이 안나왔기 때문에 매캐덤은 그 '샘플'을 내고 '이렇게 길을 만들면 실제로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만파운드의 자기 돈을 써서 도로를 만들었답니다. 제가 괜히 앞에서 '용자'라고 이야기 한게 아닙니다.
(당시 1만 파운드면 현재로 보면 억대급인거...아시죠?)

매캐덤 공법으로 만든 도로는 고대 로마 도로보다 더 많은 하중을 지탱할수 있었습니다. 이걸 조금 개량한게 현대의 아스팔트 도로입니다. 즉 이 공법으로 포장되기 이전 도로들은 현대 자동차들을 달리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적기법이건 뭐건 간에 도로 자체가 매캐덤 이전엔 비만 왔다 하면 푹푹 빠지는 거였단 말입니다.

앞서 퀴뇨의 자동차가 나왔을 때 수레, 마차들의 평균속도가 시속 1.5km 이라 했습니다. 그럼 매카덤의 도로가 나온 뒤의 속도는 얼마였을까요?
무려 평균시속 15km를 냈습니다. 혁명이었던거죠.
영국 정부가 '끝내준다!' 라면서 영국의 모든 간선도로부터 매캐덤 방식으로 몽땅 뜯어고쳐버리는 대사업에 돌입할 만 한거였습니다. 당장 날씨에 지장없이 속도가 10배가 빨라진다! 면 여러분도 솔깃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통관련에서 꼭 나오는 말이 뭐냐면 '고대 로마시대를 능가한 것은 기차다' 라는 말이 있지만 토목쪽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육상교통이 로마시대를 벗어난 것은 매캐덤 이후다'

매캐덤 이후 실용적인 철도가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노반공사를 해서 수평을 맞춰주고, 그 노반에 대한 크기와 기준만 매카덤의 그것에 맞춰만 주면 철도 레일 위에 엄청 무거운 물체도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의 철도는 나무 레일이나 조잡한 주철강이라서 큰 무게를 레일에 못올려놓은 것 외에도 '웬만한 땅에선 레일 깔아봐야 그 무게로 땅 밑으로 푸욱 들어가서 안됨' 이라는 것이 컸습니다.

증기기관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의 첫번째 기차는 '탄광'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현대 레일의 시초로 불리는 독일의 탄광에서의 화차 궤도도 '탄광' 입니다.
노반에 대한 부분들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그 조건에 그나마 충족되는건' 탄광이었습니다. 
레일의 강성 문제도 있어서 스티븐슨의 첫번째 기관차는 시속 6km정도의 속도밖에 못냈지요. 그래도 스티븐슨의 첫번째 기관차는 엄청난 각광을 받았습니다. 매캐덤 도로 이전의 평균시속 1.5km 보다 무려 네배나 빨랐으니까요! 그래서 무려 16대나 만들어서 킬링워스 주변의 탄광에서 화물용 운송수단으로 사용했던 거죠!

그러나 이후 매캐덤의 도로가 일반화되면서 스티븐슨 기차의 장점이 사라집니다. 마차가 더 빠른 속도로 짐을 나르는 겁니다!
그래서 스티븐슨은 그 공법을 철도에 끌어온 겁니다. 철도도 노면정비가 잘 되면 더 빠르게, 더 무거운 짐을 옮길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진게 '세계 최초의 실용적 철도 노선'으로 불리는 스톡턴-달링턴 철도입니다. 이게 1821년년부터 부설되어 1824년에 완공됩니다. 즉 매캐덤 공법이 영국의 '표준 공법'으로 자리잡은 뒤입니다.

스티븐슨의 첫번째 작품이 시속 6km를 냈다면 매카덤 도로의 장점을 발휘한 '스톡턴-달링턴' 철도의 평균시속은?
마차를 능가했다고 합니다.
현재 스펙에는 최고시속만 나와있지만 그것만 해도 시속 39km에요, 후대의 스티븐슨의 '로켓'이 최고시속 48km에 평균시속 18km라 했으니 로코모션도 적어도 속도는 당시 매캐덤 도로에서의 마차의 평균시속 15km급은 되었던 겁니다.
거기에 무시무시한건 화물 운송량이었습니다. 스톡턴-달링턴 철도에서 한번 기차가 다니면 운송되는 화물의 양은 무려 80톤.
당시 매캐덤 도로가 아닌 유럽의 도로에서는 상상도 못할 무게였습니다. 거기에 차 자체 무게+기관차 무게를 더하면? 적어도 100톤 넘는 하중을 레일과 노면이 다 받아냈다는 이야기입니다.

매캐덤 공법이라는 기술이 없었다면 철도와 엔진을 사용한 자동차는 그 시기에 절대 못나왔을 발명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엔진'관련 기술보다 '더 중요한 기술'로 꼽은게 바로 '도로 건설' 기술로 꼽은 겁니다.


*이거 어느 밸리로 보낼까 하다가 '역사 밸리'로 보냅니다. 자동차 밸리로 보내도 될것 같은 포스팅이긴 한데...그래도 역사쪽으로 보내야 될거 같군요.

PS:트랙백된 알파캣님의 원문에 보면 '이로 인해 석탁가격이 싸졌다' 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속도와 물량이 엄청나게 빨라지고 늘어서였던 겁니다. 가격은 운송비에 비례합니다. 이건 중세시대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캐덤 공법 도입 이후 도로와 철도의 노반이 한방에 '이전보다 엄청난 양'을 "빠르게" 옮길 수 있게 되니 운송비가 엄청 줄어든 겁니다. 운송수단에 앞서 그걸 받쳐주는 시설의 발전이 없었다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글루스 버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장 일기

글 하나에 내가 달은 리플들이 싸그리 사라진 것 발견.

이전 리플 단 것들을 캡쳐하지 못했으니 버그로 인한 삭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써 줘야지.

그러고보니 글 자체 삭제 신공을 하실지도 모르겠군.
그랬던 분이 계시니.

그라고 자동차 관련해서 지인짜 많은 분들이 잊고 있는 "자동차가 나올 수 있었던 엄청 대단한 기술" 에 대해서도 써봐야겠음.

어느분이 그 대단한 기술을 놓고 "제2 열역학 법칙" 운운하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이야기를 하셨는데...그 "아주 중요한 기술"이 나오지 않았음 와트의 증기기관이건 가솔린 내연기관이건 전기 모터건 철도건 자동차에건 "기계 동력"을 이식시킬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기술인데...그걸 모르는 븐들이 아주아주 많으심. 사실 기술 분야에서 그 사람 이름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긴 해요
웬만한 위키에도 없는 분임.
그 기술이 재발견되고 도입되지 못했다면 자동차. 기차는 한참 뒤에나 나왔을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기술인데 언급들을 잘 안한다는 거라서.

글 두개를 간만에 써볼지도요.
공돌이 정신의 과잉으로 실제 기술도입이 늦어진 것 + 한 기술이ㅜ실현되기 위해선 직접적인 관련기술 뿐 아니라 다른 간접적인 가술분야의 발전이 없음 불가하다는 거 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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