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레이드. 그것의 소소한 기록 먹자이야기

설 전의 전언 한마디. 그것으로 이들은 야밤에 수원으로 모였다.

"이번에 말이지...소 한마리 잡아볼까 하는데...한우로..."

헐? 소잡자?
그것도 한우.
그렇다 이땅의 자존심 한우. 뭔가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거쳐가야 할 듯한 의무와 함께 존내 비싸서 못먹는 그러한 체력보강의 상위에 있는 아이템이자 하악하악대야만 할 것 같은 디테일의 그분.

"요즘 한우값이 떨어져서 말이지...한 열집이 모여서 공동구매를 하면 될거 같은데..."

공구라고...공구라고...음 근데 웽? 열집?
뭔가 포장육하고는 다른 길로 가는 듯한 이 멘트에서 뭔가를 느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부위들도 많잖아. 아예 소 한마리를 사 보자는거지...일등급 소는 넘 비싸고 힘들고...이등급 정도를 노려서 말이지..."

하악! 일등급이 아니더라도 이 무슨 소식이냔 말이오.
비용은 들어가겠지만(결국 월급 떨어질 때쯤 이게 실현되서 누구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물론 며칠 뒤 월급날 갚았지만). 이러한 이색적인 레이드는 또 얼마냔 말이지.

"사골이나 그런거들은?" <- 우선순위 봐서 해야지
"특수부위는 어떡할거야? 참가자 집 대로 나누면 넘 적은데..." <- 그건 좀 생각좀 해 보자.

하고 '반달곰' 웨스 군이 제안한 이것은 그냥 일사천리로 실행되었다. 설 전에 먹는 것을 목표로 말이지!
그리고 이 레이드에 참가한 8가족의 눈빛은 그야말로 '한우 하악하악'...

그러나 설 전의 그것은 허사가 되는 듯 했다.
일단 도축을 하고 대정형 등의 순서로 들어가야 하는데...이놈의 도축.
그렇다..설 수요로 인해서 도축이 많이 되자...우리 순서가 뒤로 밀린 것. 엇 큰일이다 싶었지만 설 연휴 직전에 고기는 주동자인 웨스군네로 배달 될 수 있었다.
도착한 이 알흠다운 고기들.
근데 이 사과박스 8뱍스뿐이 아니었다...-0-
이것은 그저 '고기'에 불과했을 뿐.
그래도 잡아주시고 해 주신 분께서 대정형 뿐 아니라 큰 부위별로 저렇게 썰어서 진공포장해서 보내주셨다. 이분의 성의에 감사를.

작업 전의 식사. 어째 밤에 모이기로 되었다 1월 19일 목요일 밤. 그날은 한우레이드의 날.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분할의 달인 '한칼' 웨스군의 가게에서한 식사. 밤 9시 40분 경이었다. 금요일부터 휴가 들어가는 회사도 있고 하지만 이런저런 것으로 따져 숙성되서 먹기 딱 시작할 무렵은 설 연휴 안이다. 아슬아슬 세이프랄까.
작업에 들어가기 전 웨스군은 너무 배가 고프다며 밥부터 먹고 하기로 했다.
그렇다. 1980년대의 유행어

'밥먹고 합시다!' 도 있지 않는가. 밥심으로 이제 스타트.

소갈비의 저 알흠다운 자태. 최종 손질은 역시 양념재기 전에 하던가 굽기 전에 하는 것이 제맛. 그래도 갈비에 저렇게 잘 살을 붙여주셨다. 몇번 갈비대까지 해 주신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은 5번까지 하던가 할걸?

작업 전 손칼의 위용을 보여주는 '한칼' 웨스군.
오늘 작업에서 이른바 분배으 1차 작업을 맡을 오늘의 일꾼.

작업개시를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저 모습에서 향후 세시간 가량 진행된 한우레이드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을줄은...
물론 그때부터 알고 있었지...200kg이 넘는 고기를 써는게 쉬운 일이갔서?

최초의 칼질과 육질의 확인.
육질은 괜찮았다 3등급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단 육량이 부족했던데다가 혈흔 판정이 있어서 3등급이 되었던 것이라 추정되었다. 이미 먹어본 다른 가족분들 및 나의 의견으로는 질은 꽤 괜찮은 편. 한우는 역시 한우다. 라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근데 저 살은 뭐였더라 설도살인가? 양지였던가. 첫 스타트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역시 동영상 녹화를 해야 했나.

이건 확실히 기억난다. 양지살이다!
이름바 '양지삼겹'으로 많이 부르는 그 부분이 잘 드러난 단면. 국거리로도 좋고 저 '양지삼겹'부분이 무쟈게 별미지.

고기는 각각 등분하여 배분되었고 바로 래핑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은 바로 각 가정으로 들어가서 냉장보관 및 진공포장 보관이 될 것이다.
한우!한우!한우!
벌써부터 나오는 이 결과물에 대하여 우리는 이러한 반응이 나왔다. 으흐흐흐 하며 나오는 반응. 저걸로 두들겨 맞는다면 캬아~

꼼꼼하게 불필요한 지방을 떼어내는 웨스군의 손놀림. 어느 부위였느지 까먹었는데 저렇게 지반을 떼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떼어넨 지방은 오른쪽에 있는 봉지에 따로 보관.
저걸로 불판에 기름코팅한 뒤 굽는 것이 또 최고 아닌가. 같은 고기에서 나온 지방이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다는 것잉 상식.

저 지방부위는 칼질하는 자의 권한으로 '한칼' 웨스군이 다 가져갔다.

설깃살의 육질을 확인해 보자 하악하악.
이번 레이드의 참여 이유중 가장 큰 것은 저런 부분들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거. 사실 내가 노린 것은 토시살이었다. 특부였지!
웨스군의 손놀림이 빛나는 순간. 큰사태 분해중이다. 큰사태 채로 가져다 주셨기 땜에...이런 것이 가능했다.
웨스군 왈.

"그냥 결을 따라 갔을 뿐...칼은 거드는 것에 불과했다"

는 명언을 남기고 나온 이것.
그렇다 스윽~ 거리던 웨스군의 손놀림은 큰사태에서 아롱사태를 분리해냈다. 하악~!

하지만 귀찮다면서 아롱사태는 하나만으로 끝난...하긴 그래야지 지금 시간이 몇시이더냐.
아롱사태를 분리한 시각은 정확히 1월 19일 23시 38분의 시각이었다.

아롱사태임을 확인해 주기 위해 끄트머리를 잘라서 보여주는 웨스군.
보라 저 근육질의 하악...더 못쓰겠다...하악...

굽기의 하일라이트 등심 부분. 원래 정형을 하게 되면 사진의 왼쪽 부분은 많이 잘려나간다. 정형의 목적 중 하나는 '보기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도 있는지라. 그러나 이 고기레이드의 것은...일단 ... 저런거 다 보고 먹을수 있다는 거.
고기다! 고기다! 고기다! 그것도 한우다! 이것이 한우레이드의 목적 아닌가. 오른쪽에 보이는 저 사랑스런 떡심을 보라.

아이폰과의 비교. 저 등심은 이제 여러 가정의 식탁에 올라 므흣함을 제공해 줄 것이다.

칼질의 달인 '한칼' 웨스군이 저렇게 고기를 배분하여 자르고 하는 동안에 주방 다른 컨에는 까망님이 또 손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이드에서는 대미지 딜러나 탱커도 중요하지만 버퍼나 힐러없는 전대가 어디있단 말인가.

까망님의 광속의 손놀림. 그러나 '한칼' 웨스군의 진화는 까망님을 경악시켰다.
처음엔 부위별로 나눠야 하는 무게 때문에 여러조각을 내던 웨스군은 이젠 고기를 한번 보더니만 '한칼'로 '한집'이 가져갈 크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 허걸. 그야말로 '한칼'에 끝내버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저 '포장팀'앞에 잘려진 고기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불어 난 까망님네 가족에게 신세를 두번 더 져야 했으니...서울까지의 운송수다이 없어서 그나마 우리집과 가까운 까망님이 '김치냉장고 자리가 많이 비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하시면서 맡아주시고 했고 보관에서도 집의 진공포장기로 가자마자 바로 해 주시기로 했다. 아아 그것이 아니었다면 바로 받아왔다고 해도 오랜시간 버티기는 힘들다. 되려 숙성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지금쯤 해서 먹는 고기는 각별한 맛일 듯 하악하악

아까 분리해 나온 아롱사태를 포장한 것.
저 아롱사태는 일단 난 해당사항이 없었는데 과연 누구네 집으로 갔을까?
이번 한우레이드의 최대의 미스터리 일명 '실종된 아롱이'

집의 냉장고를 그득그득 채운 한우 레이드의 포획물들.
아마 8가정이서 약 20kg이 조금 넘는 분량으로 분빠이를 했으니(사골제외) 나름 만족한 결과였다. 도축비 및 운송비 그런 것을 포함해서 들은 비용은 한 가구당 42만원.

웨스군네 집에서 사골 구입을 해 주는 것으로 하는 등으로 해서 많은 지원이 있었고 특히 소를 골라주셔서 도축및 분할까지 해 주신 생산자 분껜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분으 배려로 인해 저렴한 가격으로 이런 고기를 구입(아니 포획)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나름 큰 의이.
더불어 참가한 집들은 설 연휴때의 든든한 친척들에의 선물 및 당분간 한우라면 '좀 나중에' 라고 할 질림을 가지진 않았을 듯 하다. 먹자 하면 한 먹자 하는 분들인지라.

다만 이날의 가장 고생한 분인 '한칼' 웨스군은 이거 끝나고 다음날 끙끙 앓아누웠다고. T_T 세시간 넘게 칼질했으니 몸이 버겨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이 언제 밥 한번 쏠께!

하여간 이번 설 연휴 직전의 한우레이드의 소소한 기억.
연초에 지른 닥터페퍼와 마운틴 듀의 활약은 다음 기회로.

글구 실은 저거 내장도 남아있음. 내장은 웨스군네집에서 냉동보관중이며 향후 또 내장처리 레이드가 있을 예정... 꺄하~
'야밤테러'라는 말을 듣기 싫으므로 해서 새벽에 올리는 것임 꺄하~

안정환 그를 추억하며 - 2 축구이야기

아마 많은 여러 '안정환을 추억하는 글'에서 당시 3인방으로 '고종수, 이동국, 안정환'을 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난 고종수 대신에 김은중을 넣었다. 사실 이건 데뷔시기및 고종수는 좀 다르게 봐야 할 필요가 있어서 분류를 따로 한 것이기도 했다. 고종수는 이때에도 잘 보면 부침을 겪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안정환-이동국-김은중이라는 '전방공격수'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니까.
(물론 명성이라던가 기타 부분에서 김은중이 뒤지는 부분이 있음은 인정해야한다)

3. 긴머리의 테크니션
여러 팬들의 글을 보면서 아쉽기도 하고 한 부분은 안정환을 놓고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말을 너무 단적으로 한 부분이라 하겠다.
사실 안정환 이전에 안정환을 능가하는 테크니션들이 대한민국에는 있었다.
최순호라는 한국축구의 거물도 있고 최문식이라는 진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도 있었다. 대학시절 부상으로 사라진 천재 '김병수'도 당대에 같이 뛰어본 선수들 입에서는 '평생에 그렇게 축구를 하는 사람은 못봤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물론 그들은 월드컵 4강에 올라선 적은 없다.
뭐 비슷한 예로 지단을 플라티니보다 높게 치는 것이 그런 '성적'이니 말이다.
아 거기에 하나 더 있다면 지금보다 더 중계가 없어서 그들의 경기장에서의 플레이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구하게 되는 그런 모습들을 본다면 안정환을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자리매김을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이야 한숨 나오는 것이지만...다시 안정환으로 시점을 옮겨보자.

여하간 안정환의 그런 '테그니션'적인 부분은 입단하자마자 바로 주전, 그것도 공격 일선에서의 활약을 하게 했다. 부산의 경기에서는 일단 안정환에게 카메라가 맞춰졌으며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했다. 여름까지는 말이다.

안정환이 보여준 한박자 빠른 슈팅과 다른 선수들이 잘 안쓰던 기술들은 수비수들을 혼란시켰다. 그가 방송경기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에 의한 극적인 승리 등은 비주얼적인 면에서 분명 한단계 위의 그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여름까지는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을 놓고 본다면 당시 아주대 감독이었던 김희태 감독이 추구하던 축구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한다. 당시 연-고대라는 트랜드에 비교하여 괄목할만한 선수들을 많이 만들어 낸 분들이 한양대, 아주대, 건국대 라 하겠다. 특히 건국대의 최종덕 감독의 '고정운 프로젝트'는 정말 대단한 거였다. 선수 한명을 정말 장기 계획으로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스피드메이커의 원투펀치 라는 한국적인 '전통적인 한국형 스트라이커 개념'을 최고조로 발전시킨 것이 건국대였고 '사실상 프로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로 전술소화력을 높여준 김희태 감독의 아주대는 정말 '아는 사람들은 학교 찾아가고 경기 찾아가서 보는' 그런 곳이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안정환의 그런 활약은 '지극히도 당연한' 거였다.
그렇기에 안정환의 '비주얼적인 면의 부각'은 그렇게 경기를 즐기는 사람에게 있어선 불안으로 다가오게 되고 그것은 현실이 된다.
이 부분이야말로 구단의 여러 부분이 부족한 부분이었다.

안정환 본인이 당시 회자한 것은 이것이었다.

"머리 긴 것도 부담이다. 경기력 자체에 영향을 끼친다"

왜 영향을 끼쳤냐고? 치렁치렁해서?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서? 그런 부분도 있었겠지만. 머리 자체의 무게가 체력 자체에 영향을 끼쳤다.
안정환 본인이 한 말이 "머리 무게 때문에 전반전만 끝나도 지친다"라고 했을 정도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치 마시라. 100g~200g 이란 무게가 아무리 가볍다고는 해도 장기전으로 갈 땐 얼마나 큰 부담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괜히 마라톤장비에서 유니폼을 몇그람이라도 얇게, 가볍게 만들려고 하고 마라톤화가 가벼우면서도 충격흡수 잘 하려고 별별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긴머리로 달려라'는 일차적인 발상은 여기서 문제를 가져온다.
안정환의 체력저하는 팀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부산은 당시 초유의 '시즌중 감독 사망'까지 겪었다. 그러한 팀내 불안 때문에 안정환과 부산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그라운드에서의 안정환의 활약은 1998 월드컵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동국과 당시부터 이미 주전자리를 넘어 리그 탑 미드필더라 봐도 과언이 아닌 고종수에 얽혀서 밀리는 듯 했다.


4.부산팬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부산에서 안정환의 인기라는 것은 부산 길거리의 패션 아이템을 바꿔버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TV연애인을 제외한' 최초의 '유행패션'을 몰고온 축구선수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배우 김희선이 곱창머리띠와 요요를 패션아이템으로 히트시켰다면 안정환도 '안정환머리띠'로 불리는 것을 히트시켰다.

머리를 '질끈' 묶은 것이 아니라 머리띠를 사용해서 묶은 그의 패션은 부산의 여고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부산에서 안정환이 사용하던 머리띠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춰 버리는, 아니 정확히는 매대에서 여학생들의 머리로 '위치이동'되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켜버린다. 그야말로 '안정환 머리띠'는 당시 부산에서 '매대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 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안정환은 부산 시장상인연합회의 감사패를 증정받기까지 한다.
아마도 시장상인연합회의 감사패를 받은 한국의 프로스포츠 선수는 안정환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관련해서 구단에 여러 마케팅 방법 이야기를 구단 관계자들과 이야기 했었었는데...그게 실현되지 못한게 아쉽다...-_-)

거기에 CF에 진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그 페이스에 웬만한 연예인들이 어디 상대가 될까.
웬만한 얼짱들은 '훗'해버릴만한 그의 미모는...뭐...많이들 보셨으니 아실 것이다.
CF도 그냥 CF가 아니라 화장품 CF였걸랑. 상대역이 김재원이라는 미남배우였는데...그 광고 구해서 보시면 알걸? 김재원도 상당한 미남인데도 그냥 밀려버릴 정도의 '그리스 조각상' 그 자체발광되던 것이 안정환이었다.

그리고 이때 여러 연예인들이 어떡하던 안정환과 관계를 맺어보려고 별별 에피소드들이 난무한다. 모 가수는 자기의 CD를 보내면서 '혹시 인터뷰하게 되면 좋아하는 가수에 자기 이름을 이야기 해 달라고'까지 했...

그러한 상품성은 드디어 안정환을 세리에 A에 아시아 선수로는 4번째 진출선수로 만든다.
당시 국제경쟁력을 위해 축구협회는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지원하고 했는데 그 물결은 안정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부산의 모기업인 대우의 후원을 얻어 안정환을 세리에로 보낸다.

아시아 선수로는 네번째로 세리에 A에 엔트리를 올려놓게 되고 그의 보헤미안 인생이 시작된다.

- 3편으로...

안정환 그를 추억하며 - 1 축구이야기

안정환 그를 기억해보자.


안정환이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그간의 10년이 넘는 행보를 보며 즐거워하고 아쉬웠던 여러 일들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1. 대졸신인.
그는 부산에 4순위로 지명되었다.

4순위.

이것만 보고 '에이~ 안정환 그렇게 순위 낮았나?' 라고 초장부터 하는 분들은 그냥 입 닥치시라.
당시 1990년대 중-후반까지의 드레프트제도에서는 1순위보다 더 높은 '진정한 1순위'는 바로 '4순위'였다.
4순위는 바로 '연고지명'의 1명의 자리였다. 연고지명은 당시 각 구단별 1개의 대학팀을 연고지명으로 둘 수 있었다. 당시 이 순위로 드래프트 된 선수중 또 한명의 대표주자라면 윤정환이었다.(당시 동아대는 유공의 연고대학이었다.)

당시 '아주대학교'는 대우재단의 학교였던만큼 자연스레 재학생인 안정환을 픽업하고 만다.
당시 김우중의 축구사랑과 바둑사랑은 대단했다. 이 축구사랑 덕에 안정환은 '세리에 A'의 유니폼을 입는 결정적인 단초가 된다.
(이 글 시리즈의 말미에 다시 소개하겠다)

참고로 당시 대우가 구축한 거제고-아주대 라인은 정말 프로가 되고 싶어하는 선수들에게 있어선 '사관학교' 그 자체였다. 청대에서 일단 '거제고' 하면 일단 '사실상 프로'라고 봐야 했으니까.

실제로도 프로팀에 합류했다가 다시 거제고나 아주대로 가는 선수도 있었다.
(당시 이런 배려는 두가지 면에서였다. 첫번째는 프로에 와서 경기를 뛰지 못해 퇴보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두번째는 군문제에 대한 연기 문제였다.)
대표적인 선수라면 김용대와 정유석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고교때는 정유석이 평가가 더 높았다. 먼저 청대 수문장을 맡기도 했을 뿐 아니라 고교시절에 이미 먼저 프로팀에 픽업된 것은 김용대가 아니라 정유석이었다.

당시 드래프트에서 첫번째로 보는 선수는 4순위와 1순이었다. 이들은 프로데뷔 첫해부터 거의 주전을 꿰차다시피 했다.
거기다 아주대학교라는 나름 '사관학교' 이것만으로도 그에게 주어진 관심은 컸다.


2. 패셔너블
안정환을 말하는 또다른 이름은 '패셔니스타'다.
하지만 그것을 추억하자면 당시 구단의 '마케팅'이라는 부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통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안정환의 2002년때의 모습 이전부터 그는 패셔너블한 선수였다.

당시 하이텔의 부산쪽 팬의 거두인 분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야구의 이쁜 선수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생긴 선수가 들어왔다. 경기력도 끝내준다. 그것도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

사실 안정환보다 '더 잘생긴' 선수가 부산에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정환 신드롬에 의해 잊혀지게 되었다. 일단 안정환은 '잘생겼다' 그때 사진 보면 정말 미소년 그 자체였다. 당시 얌전한 세레모니나 모습 때문에 그의 '짐승남'스런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하이텔 축구 팬 중 부산의 연습장을 가본 분이었다면 그의 씩쓰팩을 보고 뿅간 분들 하나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사들은 올라온 적이 거의 없다. 아쉽게도...

당시 프로파간다가 많이 부족했던 부분을 이야기 해야 하는데...
1996년에 호주 올림픽 선수들이 센세이셔널한 화보집을 발표해서 충격을 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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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누드사진집'을 낸 것인데. 그 이유가 정말 근대 올림픽의 초창기를 생각나게 한다.
제3회 센트루이스 올림픽에 출전한 브라질 선수들은 그야말로 '앵벌이'를 뛰었다. 참가비가 하도 부족해서...결국 생각타 못해 내린 방법은...
'현지에서 때워라' 였다.
그리고 정말 몸으로 때웠다. 어떻게 때웠냐면...

그때나 지금이나 '브라질' 하면 생각나는 몇가지 키워드중 하나가 무엇인가?
축구? 삼바? 그거 말구 커피 하면 또 한 브라질 하는 것이 브라질 아닌가?
브라질 올림픽 대표선수들에게 커피를 푸대단위로 같이 딸려보낸거다.
미국이야말로 독립전쟁의 기상 때문에 홍차 보다는 커피가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나라다. 괜히 아메리카노 스타일이 있는게 아니다. 그러니 '현지에서 커피 팔아서 부족한 돈 보충해!'하고 정말 올림픽 선수들이 미국 현지에서 '경기 일정 빈 선수들'이 커피 팔러 다녔다...-_-;
거기다 하필 그해는 커피 풍작인 해라서 잘 팔리지도 않아 '증말 브라질에서 가져온 커피임. 브라질 올림픽 출전선수들이 보장함!' 이라는 딱지를 붙이고(이거에 대해선 언제 먹자 관련 이야기에서 할 생각이다. 괜히 '인증샷'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팔았는데도 안팔려서 나중에는 선수들 절반 이상이 동원되서 '집에 가는 차편' 돈 낼려고 커피팔러 다녀야 했다...-_-;

여하간 그렇게 되서 나온 것이 호주 올림픽 선수들의 '누드사진'을 판매한 거였다.
이거 사진 공부하는 분들, 특히 인체라는 궁극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권씩은 필독하라. 육체미와 기능미, 그에 따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정말 하악하악 하면서 보게 만드는 책이다. 워낙 세계적으로 인기 많이 끌다보니 아틀란타 시리즈 이후 계속해서 나왔다.
일본의 그라비아와는 다르게 인간의 기능미와 누드의 다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필견서다. 특히 짐승남들을 좋아하는 여자분들에겐 일전에 '분홍만두'님께서 소개해 주신 '캐나다 소방관들의 헐벗은 사진 캘린더(매년나옴)' 와 쌍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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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당시 그런거 할수 있었느냐라면...할수는 있었다. 다만 당시 그러한 것을 하기가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까.

당시 국내에서 그런 선수들이라면 구단에서 허하는 것이 바로 '헤어 스타일'을 무조건 '긴머리' 또는 '약간 튀는 머리'로 하는 거였다.
야구의 이상훈 선수가 그러한 야생마의 이미지가 허락된 것이 그런 의미도 있었다. 일단 뭔가 패셔너블하고 멋진걸 강조하려면 무조건 머리가 길어야 했다.
안정환의 긴 머리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일단 머리를 길게 하고 봐라'

이미 그 이전에 선배인 김주성 선수가 머리를 길러서 '아시아의 삼손'으로 불린 바 있었다. 그 전철을 잇는 듯 싶었지만 김주성 선수와는 달리 생머리로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안정환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세대 튀는 스타', '얼굴빨로만 보여줄 것인가?', '이동국, 김은중, 안정환 이라는 프로에 입문한 선수들은 과연?' 이라는 화두를 가져온 안정환이었다.

이른바 '신세대 3인방'중 가장 저평가 된 것은 안정환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한국 프로축구리그를 뒤흔들게 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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