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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vs바레인 아시안게임 경기 요약 주인장 일기

오늘 경기 요약

"전반전은 잔뜩 긴장해서 갔는데 후반에 5골차나 나니까 긴장 다 풀고 스탠드플레이 하면서 건방떨고 오바질함. 학범슨이 후드려 잡지 않음 금메달 쉽지 않음"

- 끝

진짜 해외파 선수들 후드려잡지 않음 X판 날거같음.
하나 더 의심가는 부분은 있지만 쓰지 않음.


모 후배 왈 " 전반에 5골 쳐넣고 후반에 5골 먹을 기센데?"
...조현우 열일했다 정말.
수비 바뀌자마자 ... 어허허허

대한민국vs바레인 아시안게임 23분 현재 2:0 주인장 일기

여기서 감독의 선택을 봐야 하는데...
감독이 금메달을 편하게 노리려면 지금 화력시범쇼를 보여야 한다.
전반에 5골이면 아주 좋고, 차선은 전후반 합쳐서 5-6골차.

공격을 늦추지 않고 후반에 늦게 합류한 선수 테스트만 조금 하는 정도면 오늘 경기는 무난한 합격점일 듯.

화력시범쇼를 보이지 않는다면 금메달 노리기 어렵다.

몇가지 보충해야 하는게...



1. 1986년이 기점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땐 FIFA랭킹은 없었습니다만...
아시아쪽의 축구 A매치관련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수혜를 한국이 다 받았습니다.

 - 1 월드컵 지역예선
이전에는 최종예선들을 한자리에 모여서 치뤘습니다. 그런데 월드컵 쿼터 확장 이후 1986월드컵에서는 아시아에 쿼터가 2장으로 배분되는데 이걸 '한자리에 모여'가 아닌  동아시아-서아시아로 나눠서 배분했습니다. 그래서 한국팀은 동남아-극동 팀만 만나고 서아시아 팀하고는 한번도 안만나는 '중동 징크스'를 피하는 호재를 맞았죠

- 2 아시안게임
1986년 아시안게임 축구는 '이거 한국이 우승 못하면 X신' 소리 들었습니다.
조편성 일정을 빼고(조예선 및 결승까지 이동 한번도 없이 치룰 수 있는 조편성이 가능했는데 그걸 안하고 이동을 했어요. 부산>서울) 나머지는 '너무 손쉽다'는 거였습니다.
그때 아시아에서 축구 프로화가 된 나라는 홍콩(세미프로)과 한국 정도였는데 제대로 된 프로팀은 한국밖에 없었죠.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아니 이거 월드컵도 아니고 [아마추어]만 참가 가능한 대회인데 왜 프로가 나와?' 라고 항의했는데...당시 FIFA에서는 공산권과 아시아권의 프로팀들은 프로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올림픽 금메달팀을 보면 죄다 동구권입니다.
2차대전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까지는 동구권이 불참한 1984년 LA올림픽을 제외하고는 전부 동구권이 금은 쓸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골키퍼의 최고봉' 레프 야신도 무려 멜버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시죠.
그런 FIFA의 해석을 KFA가 밀어붙여서 아시안게임에 1986년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이 그냥 참가하게 됩니다(월드컵 다녀온 뒤 부상으로 출전불가인 선수 몇 만 교체한 수준).

그 결과는 가히 학살 수준이었습니다. 결승전이 2:0으로 한국이 이겼다지만 그건 한국이 잘했다기 보다는 사우디가 수비를 잘해서 2골로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참가하긴 했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중이라서 그 두 나라는 제대로 된 전력이 아니었죠...
그 결과 중동팀들은 U-23의 시험의 장으로 아시안게임은 바뀌게 됩니다. 그 결과가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U-23으로 참가기준을 올림픽처럼 바꾼 거죠. 반수 이상의 참가팀이 올림픽 대표팀에 맞춰서 선수들을 참가시키다보니 의미가 없어진 거였습니다. 1998때만 해도 중동팀들은 죄다 U-23으로 멤버 구성했어요.

이러다보니 A매치의 기준을 몇가지로 더 이야기 해야 하는데 1990년 이전만 해도 A매치 기준은 현재처럼 A/others가 아니라 A/B/others였습니다.
A매치는 말 그대로 A팀 둘이 붙는거고 B매치는 한쪽은 A팀 한쪽은 A팀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팀(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others그 외의 국제대회를 말하는 거였죠. 그러다보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경기는 A매치인 경우가 몇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한국축구의 통계가 부족해서 저와 윤형진군이 1990년대 중반부터 작업한게 언론에도 소개되었던 '대표팀 기록 정리'였습니다.


2. 이 1986년 기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이전에 '아시아축구의 최강'을 가리는 타이틀이 무엇이냐? 를 놓고 본다면
아시안컵/월드컵지역예선/올림픽지역예선
은 가히 동등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전부 그 FA를 대표하는 대표팀들이 나와서 붙은 대회였거든요. 거기다 지금처럼 월드컵지역예선과 올림픽 지역예선은 최종예선에서도 조를 나눠서 '그 조1위팀은 본선진출'이 아니라 그냥 한자리에 모여서 싱글리그 또는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가장 잘 하는 팀 하나나 둘 뽑아서 본선 나가는 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시안컵 외에도 올림픽지역예선과 월드컵지역예선도 '아시아 최강 가리기'에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대회였습니다.

그러나 1986년 이후 1990년, 1994년 월드컵 지역예선과 1992, 1996년 올림픽 지역예선을 끝으로 '최종 예선을 한자리에 모여서 하는 것'은 끝납니다. 이후 AFC는 흥행, 중계권판매 등도 있고 AFC의 각국이 프로리그가 활성화되면서 1개월 정도 리그를 비울수 없는 상황이 됨에 따라 기본적으로 '홈&어웨이'로 최종예선을 치뤄버려요. 그러면서 조별로 나누게 됨에 따라 '한자리에 모여서 최강자 뽑자!'는 대회는 아시안컵 하나만 남아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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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한국축구는 199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한자리에 모여서 경기 치룰때 상대를 압도하며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본선 진출한것을 빼고 '최강자로 올라갔다'는 말을 할수가 없습니다.
1990년의 본선진출은 1960년대 이후 한국축구가 아시아지역에서 '진검승부'를 했을 때 유일한 캐리어1위 한 때라고 봅니다. 1998월드컵 지역예선때도 1위로 올라갔다고 하는 분 계실지 모르겠는데 당시 붙은팀들 보면 UAE 빼놓고 한국 잡을만한 중동팀들은 전부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이란,사우디,쿠웨이트가 다른조에 가버려 있던 때였어요. 1990년때와 비교한다면 난이도 대폭 낮은 편이었지요.

한국은 중동의 벽을 넘고 '아시아 최강'이라고 주장할수 있는 때는 1990년 월드컵 지역예선 1위 통과 말고는 내세울 거리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 이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았죠. 실제로 1984년 올림픽 예선때엔 전세계적인 화제가 될 정도로 '심판매수' 부분이 들통나서 심판들이 징계받고 하는 대박사건이 터졌지만 예선을 다시 치룬다던가 순위가 바뀐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3
즉 한국이 '축구의 프로화'를 선언하면서 이득을 본 때는 1983-1991년 사이의 일입니다. 이때 앞서간 '프로화'는 선수들의 기량 상승을 불러왔고 아시아권의 팀들에게는 한국과 상대할 때 '기죽는'효과도 일부 가져왔던 때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최강'이라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의 타이틀을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1988년 올림픽 지역예선은 주최국이기 때문에 참가하지 않았고, 1992올림픽 지역예선도 1위로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막판 중국을 못이겼으면 예선탈락할지도 몰랐던 졸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두경기에서 노정윤의 2게임 연속골로 1:0, 1:1 이 다였고 세번째 경기에서 패배하는 등...김병수의 막판 결승골로 일본 이겨서 간신히 희망의 끈을 잡았던 대회였습니다.) 거기다 1992 올림픽 때는 연령제한도 걸려버려서 A매치로 인정되지도 않습니다.

이때 이후 중동이 본격적으로 프로로 전환하고 일본도 프로로 전환하면서 상대 우위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3. 그렇다면 1960년대 이후는?
늘 이야기하는 거지만 1975년 대한민국 축구의 A매치 무패기록 그게 아직까지도 국뽕 빠는 밑거름뽕이 되고 있습니다.
아시안컵도 반쪽 우승이었고 그 이후로는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강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아시안컵은 신경 덜 썼다'라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구요. 그럼 그 힘을 쏟았다는 올림픽과 월드컵 지역예선이라도 화끈하게 1위를 차지하며 통과한 적도 1986년까지 없었습니다. 올림픽은 무려 동경올림픽 이후 무려 1992년까지 자력진출을 못했습니다. 동경올림픽도 당시 '아랍연합'이라는 희대의 연합팀이 나와서 그 팀이 '아프리카 쿼터'를 가져가는 바람에 올라간거지 그거 아니었음 중동세와 그대로 붙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일본이 주최국인지라 지역예선 참가 안한 득도 봤고요.
더구나 아시안게임 4회 우승 중 A팀이 참가해서 거둔 우승이 3회이지만 1986을 제외한 두번은 '공동우승'이라는 부분입니다. 당시 아시안게임 결승전은 90분 승부가 끝나면 연장전이나 재경기 없이 그냥 '공동우승'으로 끝내던 때였거든요. 즉 연장전 등을 들어가면 우리가 우승한다는 100%보장 없는 우승입니다. 둘 다 단독우승이 될수도 있지만 반대인 준우승/은메달로 끝날수도 있어요.

기량들로 봤을땐 단순 FIFA랭킹으로의 환산 말고도 AFC내에서 강자들끼리 붙으면 '승부를 알기 어려움' 이라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우세한 팀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팀들이 역사관심님이 올려주신 그 표에서 '아시아 탑랭커'들입니다. 그걸 증명하는게 이란, 일본, 호주와의 경기들입니다. 단적인 예로 2000년대 초반까지 '일진일퇴'하던 이란은 케이로스 부임이후 한국이 넘지 못하는 벽이 되어버렸고, 일본과의 승부는 대승 거둔 경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붙어도 '결과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젠 중국도 공한증 깨고 가끔가다 한국 잡을수도 있다! 하고 덤벼드는 판입니다.

늘 주장하는 거지만 아시아권에선 6-8개팀이 정상을 놓고 다투고 있고 그날 컨디션과 준비에 따라서 승부가 갈립니다. 이렇게 고착화 된건 이미 19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고착화 되어 있습니다. 그중 몇팀은 '최강권'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한국은 '최강권'에 늘 들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이라면 지금의 이란의 위치에 있다고 할 정도로 '최강권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할수 있었겠지만 지금은...그정도까지는 아니라 할수 있겠지요. 2002년 이후의 '월드컵 버프' 내지는 '2002멤버'의 이점을 가져갔다 해도 '확실한 우위'를 먹고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에요. 특히 호주가 AFC로 편입되면서 그 경쟁은 더 쎄졌습니다.


4. FIFA랭킹은 위지만 상대하면 대한민국이 이기는데 말이지
이 말 처음 나온게 FIFA랭킹 초기인 1994년 이후였습니다. 이때가 어느 때냐면 일본이 전력상승을 위해 노력하던 때입니다. 거기다 일본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세계적인 홍보를 하던 때였습니다.(저~ 어기 월드컵 북유럽 지역예선전 경기에서 2002 WORLD CUP JAPAN 광고판 볼수 있던 때)
그래서 기린컵 등의 대회에 세계 각국의 A대표팀을 초청해서 경기하고 하다보니 당시 국제경기를 프로리그 때문에 덜 치루던 대한민국으로선 FIFA랭킹은 떨어졌죠. 하지만 일본과의 여러 맞대결에선 일진일퇴 하다보니 '아 그 FIFA랭킹 구라 아냐? 일본애들이 우리보다 랭킹은 높아도 그만큼 경기를 많이 치뤘고 FIFA랭킹도 다른 대륙 경기들 보면 잘 안맞고...'라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죠. 물론 FIFA랭킹 산정방법은 그 당시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산정방식이 바뀌었고 반영되는 요소도 적었던 때죠.

그런데 이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의 PC통신에서 활약한 축구논객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아시안컵의 중요성이 더 커지던 때였습니다. 객관적으로 '상대와의 비교'를 할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거죠. 그게 위에 설명한 몇가지 요소가 나오면서 적어도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아시아 최강팀'을 꼽으려면 당시의 아시안컵 우승팀을 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PC통신의 논객들간의 잠정적인 결론이었습니다. 근데 그 결론은 지금도 통할 수 밖에 없어요. 왜냐면 바뀐 환경이 없고 되려 월드컵 지역예선은 어느 팀이건 FULL 100%전력으로 나오기가 더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시안컵의 위상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어요.
어느 팀이건 '현재의 FULL전력'을 다 동원할 수 있는 대회가 그것 하나밖에 없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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